도쿠가와 이에야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Yoyoma88(토론)의 21651411판 편집을 되돌림
27.119.118.24(토론)의 21687372판 편집을 되돌림
108번째 줄:
{{본문|에도 막부|도쿠가와 쇼군}}
[[파일:Tokugawa Ieyasu.jpg|thumb|200px|쇼군 때의 이에야스]]
1603년 3월 24일, 이에야스는 [[세이이타이쇼군]]에 임명되었으며, [[후시미 성]]에서 [[고요제이 일왕천황]]의 선지(宣旨)<ref>[[아이작 티칭]], 409쪽</ref><ref group="주">쇼군을 임명할 때 일왕이천황이 형식적으로 쇼군이 된 사람에게 쇼군임을 인정하는 문서를 하사하는데 이를 선지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임금의 명령을 널리 공포할 때도 선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ref> 를 받는 의식을 거행하였다.<ref name="요시다98">요시다 외, 98 ~ 99쪽</ref> 이에야스는 [[무로마치 막부]] 이래 여러 권력자들이 [[교토 시|교토]]에 본거지를 둔 것과는 달리 자신의 본거지인 에도에 막부를 개창하였다.<ref name="요시다98"/> 그 후 이에야스는 1604년부터 에도 성을 대대적으로 증축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에도 성의 증축을 위해 이에야스는 [[도도 다카토라]]를 등용하여 설계를 맡겼고, 후쿠시마 마사노리와 가토 기요마사를 비롯한 도자마 다이묘 28개 가문에 공사를 돕도록 명령하였다.<ref name="요시다100">요시다 외, 100쪽</ref> 따라서 공사를 돕도록 명령받은 도자마 다이묘들은 1,000석 당 한 사람의 인부를 제공해야만 했다.<ref group="주">예를 들면 [[가가 국]]의 100만석을 가지고 있던 마에다 씨의 경우에는 1,000명의 인부를 제공하였다.</ref> 또한 간토 평야에는 축성에 알맞은 석재가 없었기 때문에 [[이즈 반도]]에서 채석한 석재를 배로 수송해야 했는데, 도자마 다이묘들이 10만석 당 100명이 들 수 있는 석재를 120개 준비하도록 하는 식으로 충당하였다.<ref name="요시다100"/> 이처럼 공사는 도자마 다이묘들의 막대한 비용 지출을 바탕으로 시작되어,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이에미쓰]]가 집권하던 시기인 1636년까지 20여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ref name="요시다100"/> 이러한 부역 부담을 통해 이에야스는 다이묘를 손쉽게 통제하였으며, 에도 성은 260년 간 도쿠가와 쇼군의 거성으로 자리매김하였다.<ref>요시다 외, 101쪽</ref>
 
=== 양위 이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