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공화국"의 두 판 사이의 차이

== 설립 과정 ==
{{참조|건국준비위원회}}
[[태평양 전쟁]]에 뒤늦게 참전한 [[소비에트 연방]]이 [[함경북도]] [[웅기군]]과 [[나진나진시]] [[8월 12일]]까지 점령하고, 이어 [[8월 13일]]에는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일본 제국]]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매우 당황했었으며 [[8월 15일]] 오전 9시에 [[여운형]]을 총독부로 임명했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경성시]]도 [[소비에트 연방]]이 점령할 상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선인들을 이용해 안전을 위했던 것이다. 평소 때에 [[건국동맹]]이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던 [[여운형]] 등은 총독부가 되자마자 [[1945년]] [[8월 15일]] [[일본]]을 단교하고, 광복 이후 곧바로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이어 [[경성일보]]와 [[경성방송국]] 등이 원래 조선인들의 손에 넘어갈 듯했으며, 지방에서도 역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제압했다.
 
한편, [[한반도]]의 북쪽에서는[[함경북도]] [[청진시]]가 [[8월 16일]]에 [[소비에트 연방]]이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함흥함경남도]] 동해를 건너[[함흥시]]와 [[원산원산시]]을 장악하고장악했다.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은 [[8월 18일]]에는 [[만주국]]을 멸망시켰다.
 
하지만그러나, [[조선총독부]]가 최소한 [[경성]]도 [[소비에트 연방]]이 점령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선]]인들을 이용해 안전을 위했던 것이었으나 [[소비에트 연방]]이 38선 이남으로 내려오지 않다는 것을사실을 뒤늦게 알자 [[조선총독부]]는 [[8월 20일]]에 곧바로 반격을 시도하여 결국 다시 [[경성일보]]와 [[경성방송국]] 등이 모두 [[조선총독부]]의 손아귀로 넘어간 후, [[9월 8일]]에 [[인천시]]에 상륙한 [[미국]]에게 이양시켰다.
 
[[1945년]] [[9월 6일]], 건준이 "인민대표자대회"를 열고 "조선인민공화국"을 결정·선포하였다. 중앙인민위원 55명과 후보위원 20명, 고문 12명을 선출하였으며, 군정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남북의 전 도,군,면에 인민위원회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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