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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종의 국구 ===
동부승지가 된 뒤 초간택과 재간택을 거쳐서 8월 24일 삼간택에서 [[순원왕후]]에 의해 그의 딸이 왕비로 확정, 책봉되자 일단 행부호군으로 전직되었다가 그해 [[음력 윤 8월 24일]] 국구(國舅)로서 정일품 [[보국숭록대부]]로 승진, 영[[돈녕부]]사가 되고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에 봉작되었다. 그 뒤 금위대장, 총융사,다시 금위대장, 호위대장, 훈련대장 등의 군사요직을 맡아 측근으로 철종을 보필하였고, 그 뒤 [[김좌근]], [[김수근]] 등과 함께 안동 김씨 세도의 새로운 중심인물로 떠올랐고, 영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이때 [[안동 김씨]] 세력은 조야에 크게 떨쳤다.
 
1860년 철종의 친삼촌이자 족보상 5촌인 [[풍계군]] 이당의 양자 경평군 이호가 판중추부사 김좌근 등과 그를 비판였다. 이때 그와 [[김좌근]]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경평군]] 이호는 [[사헌부]][[대사헌]] [[서대순]]의 탄핵, 처벌 상소를 받고,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된 뒤 군호를 박탈당하고 [[풍계군]]의 양자 자리에서 파양되었다. 그는 한대 [[김좌근]], [[김병국]], [[김병기]] 등과 함께 잠깐 도성 밖으로 퇴출되지만 철종의 명으로 곧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