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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
 
=== 영지주의 ===
 
{{본문|영지주의}}
 
영지주의(靈知主義, {{lang|en|Gnosticism}})는 [[고대]]에 존재하였던 [[혼합주의]]적 종교 운동 중 하나로,<ref name="Britannica 2009">{{언어링크|en|크기=9pt}} "Gnosticism" 항목, 《Encyclopædia Britannica 2009》.</ref><ref name="NaverEnc">{{언어링크|ko|크기=9pt}} [http://100.naver.com/100.nhn?docid=25086 "그노시스파"] 항목, 《네이버 백과사전》. 2010년 7월 4일에 확인.</ref><ref name="jewishenc">{{언어링크|en|크기=9pt}} [http://www.jewishencyclopedia.com/view.jsp?artid=280&letter=G&search=gnosticism "Gnosticism"] 항목, 《[[유대 대백과사전]]([[:en:Jewish Encyclopedia|Jewish Encyclopedia]])》. 2011년 1월 27일에 확인.</ref>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불완전한 신인 [[데미우르고스]]가 완전한 신의 영([[프네우마]])을 이용해 물질을 창조하였고, 인간은 참된 지식인 [[그노시스]]를 얻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구조를 지닌다.
 
[[1945년]]에 [[나그함마디 문서]]가 발견되고 그 이후 이들 1차 문헌들을 토대로 영지주의가 현대의 학자들에 의해 새로이 조명되기 이전에는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는 영지주의를 논박하는 기독교 [[교부]]들의 논서들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했다.<ref name="Encarta 2009"/><ref name="ThesophyGloss"/> 이들 논서들에서 영지주의는, 정통파 기독교에서 세력을 얻지 못하는 좌절을 겪은 배교자들이 창시한, 타락된 형태의 교의를 가진 [[기독교]]의 한 [[이단]]인 것으로 대체로 서술되고 있다.<ref>King (1887). p.12</ref> 반면,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영지주의는 교의 체계가 다양하여 특정 한 종교 분파 또는 단체로 묶을 수 없으며 기원 또한 [[기독교]]로 국한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ref name="rethinking"/> 그러나 영지주의 종교 운동이 가장 활발히 전개된 시기는 [[기독교]]가 태동하던 기원후 [[1세기]]부터 [[3세기]]까지의 시기로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 하에 전개되었다.
 
정통파 [[기독교]]와 영지주의의 본질적인 차이는 정통파 기독교에서는 [[구원]]이 "[[믿음]]([[신앙]] · [[:en:faith|faith]])"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반면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이 "[[그노시스|앎]]({{lang|en|[[:en:gnosis|gnosis]]|[[그노시스]]}})"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것에 있다.
[[파일:Simple crossed circle.svg|thumb|180px|<span style="font-size: 9pt">원 안에 십자가가 있는 [[태양 십자가]](Sun cross): 이 [[표장]]은 [[중세]]의 영지주의 관련 단체였던 [[카타리파]](Cathars: b. 11세기, fl. 12-13세기)에 의해 주로 사용되었다.</span>]]
 
==== 개요 ====
영지주의는 '''나스티시즘'''({{llang|en|Gnosticism}})을 뜻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음을 따라 '''그노시스파''' 또는 '''그노시즘'''이라고도 한다. '영지주의자'{{.cw}}'영지주의파' 또는 '영지주의적'이라고 번역되는 '''나스틱'''(Gnostic)이라는 낱말은 [[그리스어]]로 '[[신비주의|신비]]적이고 [[계시]]적이며 [[밀교]]적인 지식 또는 깨달음'을 뜻하는 [[그노시스]]({{lang|el|γνῶσις|gnosis}})로부터 따온 것으로<ref name="Britannica 2009"/><ref name="Encarta 2009"/><ref name="EncCat"/><ref name="Pagels, Elaine">Pagels, Elaine. 《The Gnostic Gospels》, Vintage Press, 1989, pgs. 18, 37, 42.</ref>, 이 낱말은 [[고대]]의 영지주의 종교 운동의 반대자들이 이 운동에 속하는 사람 또는 단체를 지칭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다.<ref name="EncCat">Frank K. Flinn, J. Gordon Melton 《Encyclopedia of Catholicism》, "Gnostic/Gnosticism" 항목, Facts On File, Inc., 2007. {{ISBN|0-8160-5455-X}}.</ref> 당시에 이 종교 운동의 분파들 중 [[기독교]] 계통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단순히 [[기독교인]]이라 불렀다.<ref name="Encarta 2009">《Microsoft Encarta 2009》, "GNOSTICISM" 항목</ref><ref name="EncCat"/> "나스티시즘(Gnosticism)"이라는 낱말은 [[고대]]에 존재하였던 이 종교 운동을 특별히 가리키기 위해 현대 학자들이 '나스틱(Gnostic)'이라는 낱말로부터 만든 말이다.<ref name="Britannica 2009"/><ref name="BriEncWldRgn">《Britannica Encyclopedia of World Religions》, "GNOSTICISM" 항목, ENCYCLOPÆDIA BRITANNICA, INC., 2006.</ref><ref name="EncGno">Wouter J. Hanegraaff, ed. 《Dictionary of Gnosis & Western Esotericism》, "Gnosticism I: Gnostic Religion" 항목, Koninklijke Brill NV, 2006. {{ISBN|9004152318}}, {{ISBN|9789004152311}}.</ref> 한글 번역어인 '영지주의(靈知主義)'라는 낱말이 어떻게 성립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영지(靈知)'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영적]] [[지식]]', '[[영적]]인 [[앎]]' 또는 '[[영]] 즉 [[프네우마]](Divine Spirit)를 아는 것'이다.
 
영지주의 운동은 특정한 한 형태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ref name="Britannica 2009"/><ref name="Encarta 2009"/> 영지주의는 다양한 [[신앙 체계]]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물질 우주]]는 [[데미우르고스]]라고 불리는 불완전한 하위의 [[신]]이 [[최고신]]의 [[스피릿]], 즉 [[프네우마]]의 일부를 사용하여 [[창조론|창조]]한 세계라는 가르침에 대해서는 분파와 무관하게 대체로 견해가 일치하였다.<ref name="blackwell">Hinnells, John. [http://www.blackwellreference.com/public/tocnode?id=g9780631181392_chunk_g978063118139217_ss1-48 《Pleroma》]. A New Dictionary of Religions.</ref> 이 교의에서, [[데미우르고스]]는 종종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야훼|신]]이나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동일한 신으로 생각되며, [[최고신]]으로부터 [[발출론|발출]]되어 형성된 상위의 세계인 [[플레로마]]나 지고한 존재인 [[최고신]]을 뜻하는 [[신격|신성]](神性)과는 대비된다.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견해는 분파 사이에 큰 차이를 보였다. 어떤 분파는 [[데미우르고스]]가 악의 물질적 화신이라고 주장한 반면, 다른 어떤 분파는 [[최고신]]에 비해 불완전한 선한 신적인 존재일 뿐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바실리데스파]]는 [[데미우르고스]]에 대해 다른 분파들과는 더 뚜렷이 구분되는 견해를 가졌다.<ref name="King1887p81">{{언어링크|en|크기=9pt}} King (1887). p.81</ref><ref name="히폴리토스7권14-15장">{{언어링크|en|크기=9pt}} 히폴리토스, 《필로소푸메나(The Refutation of All Heresies)》, [http://www.sacred-texts.com/chr/ecf/005/0050011.htm 7권 14-15장]. 2011년 1월 27일에 확인.</ref> 이 견해에 따르면, [[데미우르고스]]는 불완전한 선한 신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예수]]의 [[복음]]에 기뻐하고 이를 받아들여 스스로를 [[최고신]]이라 주장했던 이전의 [[무지]]를 반성하고 우주의 전 체계 속에서의 진정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겸손한 존재였다.<ref name="King1887p81"/><ref name="히폴리토스7권14-15장"/>
 
영지주의 운동은 [[헬레니즘 철학]]{{.cw}}[[유대교]]{{.cw}}[[기독교]]와 영향을 주고받았다.<ref name="Encarta 2009"/><ref name="Walker">Walker, Benjamin (1990). 《Gnosticism: Its History and Influence.》, Harper Collins. {{ISBN|1-85274-057-4}}.</ref> 학자들은 대체로 영지주의가 [[이원론]]적인 종교 운동이었다고 보고 있으나<ref name="Walker"/>, 한편, 가장 유력했던 영지주의 분파인 [[발렌티누스파]]를 비롯한 후대의 영지주의 운동들에서는 [[일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졌다.<ref name="val_mon">[http://www.gnosis.org/library/valentinus/Valentinian_Monism.htm 《Valentinian Monism》]. The Gnostic Society Library. 2009년 2월 12일에 확인.</ref>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함께 이러한 [[세계관]]의 다양성은 영지주의 운동에 여러가지 다양한 입장들이 서로 공존하였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로 간주되기도 한다.
 
영지주의자들과 정통파 [[기독교인]]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믿음]]이 아니라 [[앎]]([[그노시스]])이 [[구원]]의 수단이라고 여겼다는 것에 있었다. 영지주의 운동가들은 [[그노시스]]를 통해 인간의 참된 기원이 지고한 [[신성]](神性)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깨달음을 통해 인간의 성품 중 [[영성|영적 요소]]는 [[물질계]]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된다고 주장한다.<ref name="Encarta 2009"/><ref name="Pagels, Elaine"/><ref name="EncGno"/> 따라서, 영지주의 운동에서는 [[그노시스]]를, [[영성|영적 요소]]가 [[물질계]]의 속박으로부터 [[해탈|해방]]된 상태를 얻고자 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필수적인 요인이자 [[구원]]의 수단이라 여겼다.<ref name="EncGno"/>
 
한편, 다른 하나의 큰 차이점으로, 많은 영지주의자들이 [[윤회]]를 믿었다. 정통파 [[기독교]]의 [[교부]]로 알렉산드리아파를 대표하였던 [[오리겐]]에 따르면, 유력한 영지주의 분파 중의 하나였던 [[바실리데스파]]의 창시자인 [[바실리데스]]는 사람이 [[구원]]을 성취하지 못하고 죽었을 때 받는 유일한 [[내세|벌]]은 [[물질계|이 세상]]으로 [[내세|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ref name="hell">《Com. in Matt.》, l.c.</ref> 또한 [[오리겐]]은, [[바실리데스]]가 가르친 [[윤회]]의 교의로 인해, [[악|악한 행위]]를 하면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된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선|선한 행위]]를 하게 만드는 '유익한 [[두려움]]'이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고 불만을 제기하였다.<ref name="hell"/>
 
영지주의 운동가들은 인간을 [[정신]]([[영혼]])과 [[물질]]([[육체]])의 두 요소로 구성된 존재가 아니라 [[영]]{{.cw}}[[정신]]([[영혼]]){{.cw}}[[물질]]([[육체]])의 세 요소로 구성된 존재로 보았으며, 이에 따라, 현재의 영적 발달 정도에 따른 구분으로, 인간을 [[영성|영적]]인 인간([[:en:Pneumatics|<span style="color: black">Pneumatics</span>]]){{.cw}}[[정신]]적인 인간([[:en:Psychics|<span style="color: black">Psychics</span>]]){{.cw}}[[물질 우주|물질]]적인 인간([[:en:Hylics|<span style="color: black">Hylics</span>]])의 세 부류로 구분하였다.<ref name="EncCat"/><ref name="tripartite">[http://www.gnosis.org/naghamm/tripart.htm 《The Tripartite Tractate》]. The Gnostic Society Library. 2009년 2월 12일에 확인.</ref> 이 구분에 따라,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이 세 부류 중 [[구원]]을 성취할 가능성이 가장 큰 [[영적]]인 인간의 부류에 들어가며, 다른 [[기독교인]]들, 즉 당시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인들은 [[정신]]적인 인간의 부류에 들어간다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이들 세 부류의 사람들 중 영적인 인간과 정신적인 인간만이 [[그노시스]]를 가질 수 있으며<ref name="tripartite"/>, 물질적인 인간은 이번 생에서 [[그노시스]]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 이유는 물질적인 인간은 [[물질 우주|물질]]에 너무 몰입해 있으며 따라서 더 높은 차원의 [[실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ref name="tripartite"/><ref name="poeticsbecoming">Teke, Charles (PDF). [http://deposit.ddb.de/cgi-bin/dokserv?idn=981260632&dok_var=d1&dok_ext=pdf&filename=981260632.pdf Towards a Poetics of Becoming: Samuel Taylor Coleridge’s and John Keats’s Aesthetics Between Idealism and Deconstruction]. Universität Regensburg. 2009년 2월 12일에 확인.</ref>
 
[[예수]]에 대해서도 영지주의자들은 여러 견해를 가졌다. 다수의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를 지상의 인류를 [[구원]]할 수단인 [[그노시스]]를 인류에게 가져다 주고 가르치기 위하여, 지복(至福)의 [[플레로마]]를 떠나 고통이 가득 찬 [[물질계]]에 탄생하는 [[희생]]을 기꺼이 감수한 존재로, [[최고신|지고한 존재]]의 물질적 [[화신]]이라 여겼다.<ref name="EncCat"/><ref name="BriEncWldRgn"/><ref name="nhlintro">[http://www.gnosis.org/gnintro.htm 《An Introduction to Gnosticism and The Nag Hammadi Library》]. The Gnostic Society Library. 2009년 12월 2일에 확인.</ref> 반면 [[노쯔림]]과 [[만다야교]] 등의 일부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를 "거짓 메시아"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세례자 요한]]을 특히 중시하였는데, 이들은 [[예수]]가 [[세례자 요한]]이 위탁하여 맡긴 가르침들을 타락시켰다고 생각하였다.<ref name="macuch">[[:en:David Mumford Macuch, Rudolf|David_Mumford Macuch, Rudolf]] (1965). 《Handbook of Classical and Modern Mandaic》. Berlin: De Gruyter & Co.. pp. 61 fn. 105.</ref> 어떤 영지주의 가르침에서는 [[예수]]가 아니라 [[아담과 이브]]의 셋째 아들인 [[세트 (성경)|셋]]이나 [[마니교]]의 창시자인 [[마니 (예언자)|마니]]를 [[메시아]]([[구세주]])라고 생각하기도 한다.<ref name="worldview">[http://www.gnosis.org/gnintro.htm The Gnostic World View: A Brief Introduction]. The Gnosis Archive. 2009년 12월 2일에 확인.</ref> [[나그함마디 문서]]에 포함된 [[영지주의 문헌]]들 중의 하나인 《[[이집트 복음서]]》에서는 [[아담과 이브]]의 셋째 아들인 [[세트 (성경)|셋]]이 [[예수]]의 전생들 중의 하나라고 보고 있는데, [[물질계]]라는 감옥으로부터 사람들의 [[스피릿|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세트 (성경)|셋]]이라는 [[메시아]]로 [[아바타라|화신]]하였던 것처럼 동일한 목적을 위해 다시 [[예수]]라는 [[메시아]]로 [[아바타라|화신]]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보고 있다.<ref>{{언어링크|en|크기=9pt}} [http://www.gnosis.org/naghamm/goseqypt.html 《이집트 복음서》의 영문 번역본], Gnostic Society Library. 2011년 4월 17일에 확인.</ref> 또한 영지주의자들은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도 정통파 기독교와는 다른 견해를 주장하였는데, 예를 들어, 현존하는 대표적인 영지주의 성전(聖典)들 중의 하나인 《[[피스티스-소피아]]》에 따르면, [[예수]]는 [[예수의 십자가형|십자가]]에 못박히고 [[예수의 부활|부활]]한 다음 하늘로 [[예수의 승천|승천]]하여 지상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이 일시적 [[승천]] 후 다시 지상으로 와서는 지상에서 자신의 [[사도|제자들]]을 11년간을 더 가르쳤는데 그 가르침은 첫 번째 신비(First Mystery)를 완전히 알 수 있게 하는 가르침([[그노시스]])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오랫동안 많은 학자들이 영지주의 운동은 [[기독교]]의 한 분파로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 탄생 이전, 즉 [[서력기원]]의 몇 [[세기]] 전에도 영지주의 체계의 자취가 존재하였다는 다른 학설이 제기되었다.<ref name="jewishenc" /><ref name="ThesophyGloss">《Encyclopedic Theosophical Glossary》, "Gnostics" 항목. Theosophical University Press, 2009.</ref> 영지주의 운동은 [[3세기]]에 이르기까지 [[로마 제국]]과 [[고트족]]의 점령지, 또 [[사산 조 페르시아]]의 영토 등, [[지중해]] 세계와 [[중동]]으로 전파되고 발전하였다. 그러나 [[제1차 니케아 공의회|니케아 공의회]]와 여타 다른 칙령들을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파괴되는 등의 일이 있었던 [[4세기]]에는 [[로마 가톨릭교회|가톨릭교회]]의 탄압으로 그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 시기에 [[영지주의 문헌]]들의 거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사라졌으며, 영지주의 반대자들이 영지주의를 논박하기 위한 문헌의 근거 자료로 소수의 단편들만이 살아남았다. [[나그함마디 문서]]가 발견된 [[1945년]]까지 영지주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2차 자료들을 토대로 추론에 근거한 연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ref name="Encarta 2009"/><ref name="ThesophyGloss"/> [[4세기]] 이후에는 많은 수의 영지주의자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였으며, 남아 있는 [[유럽]]의 영지주의자들도 [[알비 십자군]]의 활동으로 인해 그 수가 크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소수의 [[만다야교]] 공동체들이 현대에도 남아 있다.<ref name="Encarta 2009"/>
 
영지주의 사상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있었던 많은 [[밀교]]적{{.cw}}[[신비주의]]적 운동의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ref name="Encarta 2009"/><ref name="EncCat"/> 이들 중 일부는 자신들을 [[고대]]에 있었던 영지주의 운동의 부활 또는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1945년에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에 포함된 [[영지주의 문헌|영지주의의 1차 문헌]]들은 영지주의와 [[초기 기독교]]에 대한 학자들의 이해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ref>Owens, Lance S., [http://www.gnosis.org/naghamm/nhlintro.html "An Introduction to Gnosticism and The Nag Hammadi Library"], The Gnostic Society Library. 2011년 1월 18일에 확인.</ref>
 
===기독교의 역사===
 
{{본문|기독교의 역사}}
 
==== 초기 기독교 ====
[[파일:Bloch-SermonOnTheMount.jpg|thumb|left|[[산상수훈]]. 19세기 [[카를 하인리히 블로흐]]의 작품 ]]
{{본문|초기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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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는 전파와 함께 [[박해]]를 받았다. 사도행전 7장 59절에는 [[스테파노]]가 유대교를 비난하였다는 이유로 돌을 던져 죽이는 형벌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12장 2절에는 [[야고보 (제베대오의 아들)|대 야고보]] 역시 참수형을 당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로마 제국]]은 64년부터 기독교를 박해하였는데,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연대기》(Annales)에서, [[네로]] 황제가 로마에 일어난 화제를 기독교인의 탓으로 돌리면서 박해가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ref>Tacitus, Annals,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text:1999.02.0077:book=15:chapter=44 15.44], translated by Church and Brodribb.</ref> 그러나, 네로의 박해는 일시적인 것이었고, 그 후로도 3세기 무렵까지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특별히 엄단하지는 않았다. 이 시기 기독교가 황제 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는 것은 후대에 부풀려진 이야기이다. 3세기 무렵 기독교는 로마 제국 내의 민중들로부터 극심한 공격을 받았는데, 기독교인들이 도시의 수호신에게 경배하지 않는 것을 매우 무례한 행위로 여기거나, 도시에 재앙을 초래하는 [[무신론]]적인 태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팽창이 멈추고, 노예제, 빈부 격차 등 여러 사회적 문제가 심화되자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초기 기독교는 신 앞에 인간이 평등하다고 가르쳤고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를 통하여 불안한 삶을 살던 민중을 위로하였던 것이다.<ref>역사교육자협의회, 《나만 모르는 유럽사》, 모멘토, 2004년, {{ISBN|89-91136-02-8}}, 40-42쪽</ref>
 
===== 복음서 =====
{{본문|복음서}}
예수는 자신의 행적을 글로 남긴 적이 없다. 초기 기독교 시기에 전승되어 온 예수의 행적을 모아 다양한 [[복음서]]들이 제작되었다. 성서 연구자들은 기원후 70년 무렵 [[마르코 복음서]]가 제일 먼저 만들어지고, 이후에 이를 바탕으로 [[마태오 복음서]]와 [[루가 복음서]]가 만들어 졌다고 추측한다.<ref>《성서와 기독교》, 연세대학교출판부, 2009년, {{ISBN|8917412496}}, 182쪽</ref> 이 때문에 이들 세 복음서는 [[요한 복음서]]와 달리 서로 비슷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어 공관 복음서라고 불린다.<ref>《성서와 기독교》, 연세대학교출판부, 2009년, {{ISBN|8917412496}}, 21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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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는 특별한 교단이나 교리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에서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이 기록되었다.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교종교학 명예교수 오강남은 공관 복음서와는 달리 [[영성]]을 강조한 요한 복음서나 정경으로 채택되지 않은 [[도마 복음서]]는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본다<ref>오강남, 《또 다른 예수》, 예담, 2009년 {{ISBN|89-5913-378-7}}, 20-22쪽</ref> 복음서들은 당시의 기독교인들이 주로 살았던 근동 일대의 공용어였던 고대 그리스어의 방언의 일종인 [[코이네]](koine, 공동)로 쓰였다. 2세기 중엽까지 비슷했으나 통일되지 않은 목록의 복음서과 다른 신약성서 문헌이 사용되었으나 [[마르키온]]의 구약제거와 일부 문헌의 사용 주장이 대두되어 전래되던 문헌 가운데 가장 중요한 7개를 정경으로 인정한 목록을 만들었다. 이 목록을 바탕으로 [[신약성경]]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신구약 정경에 어떠한 문헌을 정경으로 수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구약 부문에서 마르키온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교파마다 의견이 다르다.<ref>한스 요하임 그립, 노선정 역, 《읽기와 지식의 감추어진 역사》, 이른아침, 2006년, {{ISBN|89-90956-62-5}}, 288쪽</ref>
 
==== 고대 후기의 기독교 ====
===== 로마 제국의 공인 =====
[[파일:Spread of Christianity to AD 600 (1).png|thumb|고대의 기독교 전파지역<br />{{범례|#1F63A7|325년}}{{범례|#6AB4FF|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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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신학의 집대성도 함께 이루어졌는데, [[아우구스티누스]],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 [[예루살렘의 키릴로스]], [[암브로시우스]] 등의 [[교부]]들이 대표적이다.
 
===== 테살로니카 칙령 =====
{{본문|테살로니카 칙령}}
[[380년]] [[2월 27일]] [[테오도시우스 1세]]는 [[테살로니카 칙령]]을 선포하고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았다.<ref>박상진, 《지중해 문명의 바다를 가다》, 한길사, 2005년, {{ISBN|89-356-5635-6}}, 69-70쪽</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