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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 정치 초기부터 서인과 대립하던 동인은 [[조선 선조]] 때 일어난 [[정여립]]의 역모 사건을 계기로 남인과 북인으로 분파되었다. 남인은 서인과의 대결에서 상대적으로 온건론을 내세웠고, 정여립의 사형을 주장한 강경파는 북인을 형성했다. 중심 인물은 [[정인홍]], [[이발]], [[이산해]] 등이다. 이들은 [[유성룡]]이 이끄는 남인과 대립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남명 조식|조식]]을 따르는 선비들이었다. 반면 남인에는 [[이황]]의 학문을 계승하는 유학자들이 참가했다.
 
북인은 선조 생존 당시 세자인 [[광해군]] 편에 섰다. 대립 초기에는 남인이 우세했으나, [[1602년]]에 [[임진왜란]] 때의 타협적 정책을 빌미로 정인홍의 탄핵을 받은 유성룡이 밀려나면서 북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1606년]]에는 [[인목대비]]가 선조가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을 출산하여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쟁이 치열해졌다. 선조가 [[1608년]]에 세자 문제를 결정 짓지 못하고 사망하여 광해군이 등극하면서 북인은 집권당으로 부상했다. 집권당이 된 북인은 고위 관료 중심의 [[대북 (정치)|대북]]과 신진 세력인 [[소북]]의 두 개 정파로 분리되었다구성되었으며, 선조 말기에는 소북이, 광해군 대에는 대북이 집권했다.
 
[[1606년]]에는 [[인목대비]]가 선조가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을 출산하여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쟁이 치열해졌다. 선조가 [[1608년]]에 세자 문제를 결정 짓지 못하고 사망하여 [[광해군]]이 등극하면서 광해군을 적극 지지한 소북이 집권당으로 부상했다.
[[1623년]]에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이 성공하면서 북인은 몰락하여 거의 전멸하였다. 이후 동인의 전통은 서인의 보복을 피하여 살아남은 남인과 일부 소북이 잇게 되었다.
 
[[1623년]]에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이 성공하면서 북인은 몰락하여몰락하였고, 특히 광해군 재위 당시 집권당이었던 대북은 거의 전멸하였다. 이후 동인의 전통은 서인의 보복을 피하여 살아남은 남인과 일부 소북이 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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