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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경성사범학교에 입학할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고향 어른 계초 [[방응모]]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고, [[방응모]]는 그의 보증을 서 주었다. 1944년 [[9월]] [[경성사범학교]] 본과를 졸업했고, 귀향하여 잠시 [[정주]] 조일소학교의 교사로 있다가 [[구성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구성국민학교]] 교사로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광복 이후 소련군 진주에 환멸을 느껴<ref name="choseon01">[{{웹 인용 |url=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501/200501090139.html |제목=윤전기 세우고 'DJ 납치사설' 쓰다 - 조선일보] |확인날짜=2012년 08월 18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822102543/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501/200501090139.html |보존날짜=2014년 08월 22일 |깨진링크=예 }}</ref> [[1946년]] [[2월]] 교사직을 사퇴하고 월남했다. [[1946년]] 경성사범 입학 때 보증을 서 줬던 고향 어른 계초 방응모를 찾아가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그는 민족지도자들을 가까이 취재하면서도 어떤 정당·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았다.<ref name="choseon01"/> [[1946년]]말 [[조선일보]]에 입사,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다가 입사 1년이 안 돼 [[미국]] 유학을 꿈꿨으나 실현하지 못하고 조병화 시인의 소개로 [[1947년]] 다시 인천중학교 교사가 되었다.<ref name="choseon01"/>
 
==== 군 복무와 6.25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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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668 '언론인 정도를 지킨 거인' 조선 선우휘 주필? - 미디어 오늘] 2005년 01월 11일자
*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7/09/14/200709140500007/200709140500007_1.html (환단고기의 진실) 제2부 -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
* [https://web.archive.org/web/20140822102543/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501/200501090139.html 윤전기 세우고 'DJ 납치사설' 쓰다 - 조선일보]
* [http://news.donga.com/3//20060613/8317468/1 언론인 선우휘 20주기 추모식 - 동아일보]
* [http://news.donga.com/3//20060612/8316986/1 선우휘씨 20주기 추모모임 -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