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리드 커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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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
아스트리드 커처는 1938년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포드 모터 컴퍼니]] 독일 지사 전직 간부의 딸로 태어났다.{{sfn|Harry|1997|p=179}} [[제2차 세계 대전]] 중 [[발트 해]] 인근 방공호에 대피해 있을 때 해안가에서 시체를 보았다고 기억한 그녀가 함부르크에 돌아와 있을 때엔 도시가 파괴된 상태였다.<ref name="InterviewAstridKirchherrRetrosellers">{{웹 인용 |url=http://www.retrosellers.com/features10.htm |title=An interview with Astrid Kirchherr |first= |last= |publisher=Retrosellers |accessdate=30 May 2011 |보존url=https://www.webcitation.org/6AP2qWkny?url=http://www.retrosellers.com/features10.htm |보존날짜=2012년 09월 03일 |깨진링크=예 }}</ref> 커처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함부르크의 마이스터 학교인 Meisterschule für Mode, Textil, Graphik und Werbung에 등록했지만, 흑백 사진 촬영에 소질이 있는 편이었다.<ref name="RedfernsMusicPictureGallery">{{웹 인용|url=http://gallery2.redferns.com/gallery_text/photographer_biographies/astrid_kirchherr_biog.htm |title=Photographers: Astrid Kirchherr |first= |last= |publisher=Redferns Music Picture Gallery |accessdate=30 May 2011|archiveurl = https://web.archive.org/web/20080119124001/http://gallery2.redferns.com/gallery_text/photographer_biographies/astrid_kirchherr_biog.htm |archivedate=30 May 2011}}</ref><ref>{{웹 인용|url=http://www.theater-schwedt.de/idx/info/1073/go/kirchherr/|title=Astrid Kirchherr|work=Happy Birthday Yellow Submarine|language=독일어|publisher=www.theater-schwedt.de|accessdate=30 May 2011}}</ref> 그 학교에서 사진 과정을 가르치던 라인하르트 울프는 그녀의 사진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전공을 이쪽으로 바꾸라고 했으며, 이수를 마치면 자신의 조수로 고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sfn|Harry|1997|p=179}} 커처는 1959년부터 1963년까지 울프의 조수로 일했다.{{sfn|Miles|1997|p=64}}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 커처와 그녀의 미술 학교 친구들은 유럽의 실존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그 추종자들은 후에 레논에 의해 "Exis"라는 별명을 얻었다.{{sfn|Spitz|2005|p=222}} 1995년 그녀는 BBC 라디오 메르시사이드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의 철학은, 저흰 단지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검은색 옷을 입고 음침해 보이게 만든 게 다였습니다. 물론 저희는 [[장폴 사르트르]]가 누군지 알고 있었어요.<ref name="AstridInterviewNZ">{{웹 인용|url=http://www.elsewhere.co.nz/absoluteelsewhere/505/astrid-kirchherr-beatles-photographer-interviewed-1994-young-free-and-wild/ |title=Astrid Kirchherr, Beatles Photographer, Interviewed (1994): Young, Free And Wild |first= |last= |page=|publisher=Elsewhere Ltd. |date=13 Mar 2008 |accessdate=30 May 2011}}</ref> 우리는 모든 프랑스 예술가와 작가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였어요. 영국은 너무 멀리 있었고 미국은 말하면 입만 아프죠. 결국 프랑스가 가장 가까웠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프랑스로부터 모든 정보를 얻었습니다.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처럼 옷을 입었어요... 우리는 자유롭고 싶었고, 다른 이들과는 다른 개성을 가지고 싶었고, 소위 쿨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ref name="InterviewBBCLiverpool">Kirchherr's interview with Spencer Leigh on BBC Radio Merseyside's 500th ''On the Beat'' programme, Saturday 26 August 1995.</ref><ref name="AstridKirchherrquotesPiczo">{{웹 인용|url=http://astridkirchherr.piczo.com/?g=15644731&cr=3|title=Astrid Kirchherr quotes |first= |last= |publisher=Piczo |accessdate=30 May 2011}}</ref>
 
==비틀즈==
커처, 부어만, 볼머는 친구 사이였으며 모두 Meisterschule에 재학하고 있었다. 그리고 패션, 문화, 음악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어만은 아스트리드의 남자친구가 되었고, 자신의 방이 생긴 커처의 집으로 거주지를 옮겨왔다.<ref name="AstridKirchherrbiogPiczo">{{웹 인용|url=http://astridkirchherr.piczo.com/?g=15644505&cr=3 |title=Astrid Kirchherr biog |first= |last= |publisher=Piczo |accessdate=30 May 2011}}</ref> 1960년 커처와 볼머가 부머를 두고 다툰 뒤로 부어만은 Reeperbahn 길을 걷다가 인근 카이저스캘러 클럽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었다. 그쪽으로 걸어간 부어만은 당시 레논, 매카트니, 해리슨, 섯클리프, 베스트로 구성된 비틀즈의 공연을 목격하게 된다.<ref name="KlausVoormannBiographycom">{{웹 인용 |url=http://www.voormann.com/biography |title=Klaus Voormann Biography |first= |last= |publisher=Klaus Voormann |accessdate=30 May 2011 |보존url=https://www.webcitation.org/6AP2tZeDK?url=http://www.voormann.com/biography |보존날짜=2012년 09월 03일 |깨진링크=예 }}</ref> 부어만은 커처와 볼머에게 자신이 들은 새로운 음악을 권했고, 그들은 카이저스캘러로 가는 데 설득되었다(클럽이 있던 장소는 꽤 거칠었다).<ref name="FreshAirinterviewwithAstrid">{{웹 인용|url=http://www.npr.org/templates/player/mediaPlayer.html?action=1&t=1&islist=false&id=18112532&m=18112531 |title=’’Fresh Air’’ interview with Astrid Kirchherr (15 January 2008) |first= |last= |publisher=[[WHYY-FM]]|accessdate=30 May 2011}}</ref> 커처는 비틀즈와 가까이 지내는 것만이 자신이 바랬던 모든 것임을 깨달았다.{{sfn|Miles|1997|p=61}} 이 세 명의 친구들은 이전에 [[로큰롤]]이라는 신흥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고작 [[냇 킹 콜]]이나 [[더 플래터스]] 등의 고전 재즈밖에 접하지 못했다.{{sfn|Spitz|2005|p=222}}{{sfn|Miles|1997|p=62}} 세 명은 카이저스캘러를 거의 매 밤 9시마다 방문했고, 무대 바로 앞의 의자에서 지냈다.{{sfn|Spitz|2005|p=221}} 커처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건 제 머릿 속에서 마치 회전목마처럼 맴돌았어요. 그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죠... 2분만에 제 삶이 송두리째 변했어요. 제가 바랬던 건 그들과 함께 있고 또 그들을 아는 것 뿐이었죠."{{sfn|Spitz|2005|p=223}}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