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장군의 노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한자 이름, 각주 추가
10 개의 출처 구조, 0 개의 링크를 깨진 것으로 표시 #IABot (v2.0beta3)
1번째 줄:
'''김정일 장군의 노래'''(金正日將軍之歌, {{llang|en|Song of General Kim Jong Il}})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방위원장 [[김정일]]을 우상화, 찬양하는 노래이다. 1997년 4월 9일 [[노동신문]]에 공개되었으며 그날은 김정일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된지 4주년 되는 기념일이었다고 노동신문은 보도하였다.<ref name="rd_2017_0215">[노동신문 2017년 2월 15일 기사 "백두산장군송가와 더불어 태양조선 무궁번영하리라 -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정일 장군의 노래〉의 20년 력사를 돌이켜보며"]</ref> 이 노래는 [[김정일]] 정권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내외 행사에서 그들의 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애국가]]보다 널리 연주되었으며,<ref>{{뉴스 인용 |저자=안윤석 |날짜=2014-09-21 |제목=인천에 울려퍼진 북한 애국가, 누가 언제 작곡?|url=http://www.nocutnews.co.kr/news/4091566|뉴스=노컷뉴스|출판사= |위치= |확인날짜=2018-06-2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626110913/http://www.nocutnews.co.kr/news/4091566|보존날짜=2018-06-26|깨진링크=아니오}}</ref>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더불어 이른바 영생불멸의 혁명송가로 불린다.<ref>{{뉴스 인용 |저자=조숭호 |날짜=2012-12-14 |제목=北 ICBM 실험 쇼크, 北에만 들리는 우주의 노래 소리?|url=http://news.donga.com/ISSUE/election2016/News?reg=20121214&gid=51584398|뉴스=동아일보|출판사= |위치= |확인날짜=2018-06-2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628124739/http://news.donga.com/ISSUE/election2016/News?reg=20121214&gid=51584398|보존날짜=2018-06-28|깨진링크=아니오}}</ref>
 
== 배경 ==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는 1971년 발표된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부터 김정일 정권의 마지막 시기인 2011년 〈조선의 힘〉까지 수많은 음악이 있었으나 〈김정일 장군의 노래〉는 그중 가장 널리 알려졌고 또 유명한 노래이었다. 이 노래가 발표되었던 1997년, 국내외적으로 [[김일성]] 사망 이후 국제 사회의 대북 경제적 봉쇄,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그리고 혹심한 자연재해로 인한 식량부족<ref>{{서적 인용 |저자=김혜련 |날짜=2007-10 |제목=북한 주민의 영양상태 현황과 정책 과제 (보건복지포럼 통권 제132호) |url=https://www.kihasa.re.kr/web/publication/periodical/list.do?menuId=48&tid=38&bid=19&aid=137 |위치= |출판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 |쪽=25 |isbn= |확인날짜=2018-06-2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628124745/https://www.kihasa.re.kr/web/publication/periodical/list.do?menuId=48&tid=38&bid=19&aid=137 |보존날짜=2018-06-28 |깨진링크=아니오 }}</ref> 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던 때였는데,<ref>{{뉴스 인용 |저자=김두환 |날짜=2005-10-01 |제목=북 교수가 밝힌 90년대 '고난의 행군' 3가지 이유 (서울=연합뉴스)|url=http://www.hani.co.kr/kisa/section-001005000/2005/10/001005000200510011154593.html|뉴스=한겨레|출판사= |위치= |확인날짜=2018-06-2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628124825/http://www.hani.co.kr/kisa/section-001005000/2005/10/001005000200510011154593.html|보존날짜=2018-06-28|깨진링크=아니오}}</ref> 이러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지도자를 찬양하고 우상화하는 노래가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인민예술가]] 설명순이 작곡하고<ref>{{뉴스 인용 |저자=노재현 |날짜=2012-07-21 |제목=北혁명가요 작곡가 설명순 사망|url=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2/07/21/0505000000AKR20120721049700014.HTML|뉴스=연합뉴스|출판사= |위치= |확인날짜=2018-06-2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628124853/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2/07/21/0505000000AKR20120721049700014.HTML|보존날짜=2018-06-28|깨진링크=아니오}}</ref> 신운호가 작사한 이 노래는 1997년 김정일의 생일 전날인 2월 15일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의 연주로 첫 선을 보였다고 북측 매체는 보도하였다.
 
== 내용 ==
이 노래에서 [[김정일]]은 이른바 태양의 위업 빛낸 인민의 영도자, 주체의 낙원 가꾼 행복의 창조자 그리고 자주의 기치 높이 든 정의의 수호자로 포장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음악은 혁명성과 인민성, 정치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음악예술의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도자 개인의 찬양과 우상화 추구를 위한 대중매체로 변질된 것은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ref>{{웹 인용 |url=http://musichistory.or.kr/wp-content/uploads/2016/02/%EC%9D%B4%EC%9E%AC%EC%9A%A9_%EA%B9%80%EC%9D%BC%EC%84%B1_%EB%B6%89%EC%9D%80%EB%8F%85%EC%9E%AC%EC%9D%98%EB%85%B8%EB%9E%98.pdf |제목=김일성 붉은독재의 노래 p163|저자=이재용 |날짜=2012 |웹사이트=음악사 연구회 제1집|출판사= |확인날짜=2018-02-2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626054542/http://musichistory.or.kr/wp-content/uploads/2016/02/%EC%9D%B4%EC%9E%AC%EC%9A%A9_%EA%B9%80%EC%9D%BC%EC%84%B1_%EB%B6%89%EC%9D%80%EB%8F%85%EC%9E%AC%EC%9D%98%EB%85%B8%EB%9E%98.pdf|보존날짜=2018-06-26|깨진링크=아니오}}</ref> 국가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정권의 안전과 보위를 위하여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찬양하고 우상화하는 노래를 널리 보급하는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또 다른 음악 정치의 형태로 볼 수 있다. 한편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함께 〈김정일 장군의 노래〉는 이른바 김일성, 김정일조선의 2대 민족가로 칭하고 있다고 노동신문은 보도하였다.<ref name="rd_2017_0215" />
 
== 선전선동의 상징 ==
12번째 줄:
또한 2015년 10월 18일, 노동당창건 70주년을 기념하는 [[청봉악단]]의 평양 공연 마지막 날에 [[김정은]], [[리설주]] 부부는 [[모란봉악단]]의 단원들과 함께 이 공연을 관람하고 공연장인 [[인민극장]]의 현관 홀에서 모란봉악단의 지도부 그리고 단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에서 [[인민극장]] 현관 홀에도 마찬가지로 〈김정일 장군의 노래〉 악보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벽에 커다랗게 부조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민은기 서울음대 교수는 저서 《독재자의 노래》에서 예술로서의 음악이 아닌 이러한 지배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음악을 비판하였다.<ref name="m_song">{{서적 인용|author1=민은기|author2=|title=독재자의 노래|date=2012|publisher=한울|isbn=978-89-4604-622-1}}</ref>
 
[[조선중앙통신]]은 2009년 4월 5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에서 [[은하 2호]] 로켓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으며 로켓에 실린 인공위성 [[광명성 2호]]를 궤도에 진입시켰다고 발표했는데 광명성 2호에서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470MHz로 지구로 전송되고 있다고 소개하였으며,<ref>{{뉴스 인용 |저자=장용훈 |날짜=2009-04-05 |제목=북 "광명성2호 인공위성 궤도 진입 성공" |url=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348048.html|뉴스=한겨레|출판사= |위치= |확인날짜=2018-06-2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626082726/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348048.html|보존날짜=2018-06-26|깨진링크=아니오}}</ref> 2012년 12월 12일의 [[광명성 3호]] 역시 궤도에 진입하여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지구로 전송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지만<ref>{{뉴스 인용 |저자=김미경 |날짜=2012-12-18 |제목=北 광명성3호, 김정일 노래 전송하고 있다더니…|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219500004|뉴스=서울신문|출판사= |위치= |확인날짜=2018-06-2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725225128/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219500004|보존날짜=2018-07-25|깨진링크=아니오}}</ref> 아마추어 무선가들은 어떠한 신호도 잡을 수 없었다고 영국의 매체는 보도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s://www.wired.com/2012/12/launch/ |제목=ALMOST EVERYTHING YOU'VE HEARD ABOUT THE NORTH KOREAN SPACE LAUNCH IS WRONG |저자=Brian Weeden |날짜=2012-12 |웹사이트=wired.com UK |출판사= |확인날짜=2018-06-26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626054424/https://www.wired.com/2012/12/launch/ |보존날짜=2018-06-26 |깨진링크=아니오 }}</ref> 또한 1998년 8월 31일 [[광명성 1호]] 발사 당시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켰으며 위성에서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이른바 주체조선이라는 [[모르스]] 전신부호와 함께 27MHz로 지구로 전송되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또한 주장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repo.kinu.or.kr/bitstream/2015.oak/1504/1/0001447907.pdf |제목=주간통일정세 2009-14(2009.03.30~04.05) |저자=통일연구원 |날짜=2009-04 |웹사이트=kinu.or.kr |출판사= |확인날짜=2018-06-26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626054904/http://repo.kinu.or.kr/bitstream/2015.oak/1504/1/0001447907.pdf |보존날짜=2018-06-26 |깨진링크=아니오 }}</ref>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