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코쿠지 에케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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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ideyoshi no risshi.jpg|섬네일|안코쿠지 에케이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안코쿠지 에케이'''({{llang|ja|安国寺 恵瓊, あんこくじ えけい}}, [[1539년]]? ~ [[1600년]] [[11월 6일]])는 [[센고쿠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걸쳐 활약한 [[승려]] 겸 [[다이묘]]이다. 안코쿠지라는 성은 [[아키 국]](현 [[히로시마현]])에 있는 사찰명에서 기인한 것이다. [[주고쿠]]의 대 세력 모리 가문의 외교승으로 활약해 다이묘의 신분에 오른 인물이다. 임진왜란에서 의병장 [[곽재우]]와의 전투로 익히 알려져 있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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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모리 가문이 스승 엔신에 귀의한 관계로, 모리 가문의 외교승이 된다. [[겐키]] 원년([[1570년]]) 모리 가문과 대립하고 있던 [[분고노쿠니|분고]]의 [[오토모 소린]]과의 화친을 성사시킨다.
 
[[덴쇼 (1573년)|덴쇼]] 10년([[1582년]]) 모리 가문은 [[하시바 히데요시]](후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고쿠]] 공략의 발판으로 [[빗추 국|빗추]] [[다카마쓰 성다카마쓰성 (오카야마 현오카야마현)|다카마쓰 성]]으로 진군하자, 대치하였고, 공방전 중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횡사하였다. 이 때, 하시바 히데요시는 이 사실을 숨기고 모리 가문과 화친을 제안한다. 이에 외교승이었던 에케이는 이를 수락한다. 이는 에케이 자신이 히데요시의 약진을 예측해 히데요시의 제안을 수락한 것이라고 한다.
 
덴쇼 13년([[1585년]]) 음력 1월, [[하시바 히데요시]]가 모리 가문에 정식으로 복속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이를 수락하고, 히데요시의 신임을 얻는다. 그리고, [[시코쿠]] 평정 후, [[이요 국]]내 2만 3천 석의 영지를 하사받았으며, 덴쇼 14년([[1586년]]) [[규슈]] 평정 후, 6만석으로 가증되었다. 승려이면서 다이묘의 신분에 오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 히데요시의 측근이 되어 전국에서 행해진 검지의 실무를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