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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제니오 디 사보이아카리그나노사보이아카리냐노 공자'''({{llang|it|Principe Eugenio di Savoia-Carignano|프린키페 에우제니오 디 사보이아카리냐노}}, {{llang|fr|prince François Eugène de Savoie-Carignan|프랭스 프랑수아 외젠 드 사부아카리냥}}, {{llang|de|Eugen Franz, Prinz von Savoyen-Carignan|에우겐 프란츠 프린츠 폰 사보이엔카리그난}}: [[1663년]] [[10월 18일]] – [[1736년]] [[4월 21일]])<ref>[[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외젠의 죽음을 4월 24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ref>은 유럽 역사에서 가장 탁월하며, 성공한 군사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사보이아가]]의 귀족으로 [[파리 (도시)|파리]]에서 태어나 [[루이 14세]]의 프랑스 궁정에서 성장했다. 외젠은 교회에서 경력을 쌓아 주교가 될 예정이었으나, 그의 나이 19세때 군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루이 14세로부터 프랑스 군대에서 복무하는 것을 거절 당하자, 외젠은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합스부르크 군주국]]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외젠은 60년의 기간 동안 3명의 합스부르크 황제 [[레오폴트 1세 (신성 로마 제국)|레오폴트 1세]], [[요제프 1세]]와 [[카를 6세]]를 섬겼다. 외젠의 첫 활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은 1683년의 [[빈 전투|빈 공방전]](Siege of Vienna)에서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벌인 것이고, 뒤이어 [[신성 동맹 전쟁]](War of the Holy League)과 그 후 [[대동맹 전쟁|9년 전쟁]]에서는 그의 사촌인 [[비토리오 아마데오 2세|사부아 공작]](Duke of Savoy)과 함께 싸웠다. 그렇지만, 외젠의 명성을 드높인 것은 1697년 [[젠타 전투]]에서 오스만군을 상대로 압승을 거둔 것 때문이었다. 외젠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참가하는 동안 [[말버러 공작 1세 존 처칠|말버러 공작]]과 함께 협력하여 프랑스를 상대로 [[블렌하임 전투|블렌하임]], [[오우데나르데 전투|오우데나르데]]와 [[말플라크 전투|말플라크]]의 전장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고, 특히 그는 나아가 북이탈리아의 제국군 사령관으로 출세해 1706년 [[토리노 전투|투린]]에서 가장 명백한 승리를 얻었다.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 (1716년-1718년)]]에서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새로운 적개심을 갖고 시작한 [[페트로바라딘 전투|페트로바라딘]](Petrovaradin)와 [[베오그라드]]에서 승리를 거둬 그의 명성을 굳건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