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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계급 = [[예비역]] [[대한민국 해군]] [[소령]]
| 정당 = [[무소속]]
| 배우자 = 김영옥(金英玉)
| 자녀 =
| 근무 = [[대한민국 해군본부|해군본부 정훈국]]
| 지휘 = 정훈장교
[[한성부]] 출생으로 본관은 [[파주 염씨|파주]](坡州)이며 [[호 (이름)|아호(雅號)]]는 제월(霽月), 횡보(橫步)이다.
 
[[1897년]] [[8월 3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중추원 참의 염인식(廉仁湜)의 손자이며, 가평 군수 염규환(廉圭桓)의 8남매 중 셋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경주(慶州) 김씨, 부인은 의성(義城) 김씨김영옥김씨 문중 출신이던 김영옥(金英玉)이다.<ref>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97%BC%EC%83%81%EC%84%AD&ridx=0&tot=1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ref> 한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인 그는 [[일본]] [[게이오기주쿠 대학]] 유학 시절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됐다. 귀국한 후 [[1920년]] 《[[폐허]]》동인에 가담해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21년]] 발표한 단편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 는 한국의 첫 [[자연주의 (문학)|자연주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동인]], [[현진건]]과 함께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문학을 이 땅에 뿌리내린 작가로서 큰 공적을 남겼다. [[1936년]]에 매일신보의 정치부장, 만선일보의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1946년]]에는 경향신문의 창간 편집국장을 지내는 등 신문기자로도 많이 활동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해군 소령으로 임관되어 해군본부 정훈감실에서 편집과장으로 근무했으며, [[1954년]] 서라벌 예술대학 학장으로 취임했다.
 
대표적인 장편소설 〈[[삼대]]〉, <[[만세전]]>, <[[두 파산]]> 등이 있다. [[만세전]]은 [[천재교육]]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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