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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맹은 기한이 5년으로 양국의 [[제국주의]] 정책을 상호 지원·보완하는 내용으로 성립되었기 때문에 러·일전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독일 문제로 영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던 프랑스까지 일본의 일이라면 중립을 지키게 되었다. [[청일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 후 랴오둥반도 할양 문제를 놓고 [[프랑스]], [[러시아]], [[독일]]이 청나라의 편을 들어 일본에 무력시위까지 감행했던 것(이른바 [[삼국간섭]])을 참작하면 엄청난 반전이었다.
 
[[1905년]] [[8월 12일]] 양국은 협약을 개정하였는데, 일본의 조선 보호권을 확인하고, 동맹 적용 범위를 인도까지 확대하였다. 또한, 동맹국이 한쪽의 다른 1국과 전쟁을 하는 경우도 동맹국이 참전하기로 하였다([[공수 동맹]]). 2차 조약 조인 후 [[을사조약제2차 한일협약]]이 같은 해 [[11월 17일]]에 체결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 기한은 10년 동안이었으나, 1911년 7월 13일 다시 개정되어 다시 10년 동안 연장하였으며, 미국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일본은 미국과 이미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보장받고 있었다.
 
또 국제 상황의 변화로 대러시아 동맹에서 대독일 동맹으로 전환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일본은 이 조약을 구실로 영국과 함께 [[연합국 (제1차 세계 대전)|연합국]] 진영에 참전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인 1921년 [[워싱턴 회의]]에서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4개국이 체결한 조약이 성립되면서 폐기되었으며 1923년 8월 17일 영일 동맹은 공식 폐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