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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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성 ==
한양대 작곡과에서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유재하는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첼로]] 등의 악기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08231010521&code=900313|제목=[커버스토리]유재하, 한국 ‘대중음악의 自主’ 를 이루다|성=|이름=|날짜=|뉴스=경향신문|출판사=|확인날짜=}}</ref> 봄여름가을겨울에서 유재하와 함께 활약하고 그의 추모 공연에서도 피아노를 연주한 [[박성식]]은 유재하의 연주를 이렇게 평가했다. "연주자로서의 유재하는 자신만의 독득한 감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감정이 잘 살아 있어 듣는 사람에게 크게 어필한다는 게 특징이었죠.<ref name=":10" />{{quote box|align=right|width=30em|quote=재하의 천재성에 중요한 요소는 오케스트레이션이었다. 오케스트라의 화법이 분명 달랐다. 음악을 언어라고 하면 단어의 구사가 달랐고 그 언어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재하의 오케스트라는 [[냇 킹 콜]], [[웨스 몽고메리]], 그리고 70년대 오케스트라를 연구했던 것이었는데 당시 우리는 그런 것들이 먼 이야기였는데 재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ref name=":6" />|출처=―[[김종진 (가수)|김종진]]|bgcolor=#FFFFF0|quoted=true}}
 
[[임진모]]는 "피아노는 말할 것도 없고, 바이올린 첼로 기타를 마스터했으며 작사 작곡 솜씨도 뛰어났다. 악기에 능통한 덕분이었지만 편곡까지 도맡았다는 점은 당시 상황으로서는 놀라운 것이었다."고 말했다.<ref name=":3" /> 음악웹진 이즘 필자 조이슬은 "그가 드럼, 기타, 건반을 모두 소화해낸 멀티 플레이어라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바로, 악기 하나하나의 음색까지 정확히 파악하여 곡 전체를 조율하고, 곡의 질감을 결정하는 비범한 '편곡' 능력이었다. 우리가 지금에서도 '고급가요'라고 부르는 정통 발라드의 얼개를 사실상 이 때 형성한 것이다."라고 말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vop.co.kr/A00000089946.html|제목=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가 남긴 발자취|성=조이슬|이름=|날짜=2007-10-30|뉴스=민중의소리|출판사=|확인날짜=}}</ref>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고 있는 [[신승훈]]은 "작사, 작곡, 편곡이 모두 유재하로 표기되어있는 것을 보고 일대 충격을 받았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vop.co.kr/A00000089944.html|제목=변색되지 않는 아름다움, 유재하의 음악|성=배순탁|이름=|날짜=2007-10-30|뉴스=민중의소리|출판사=|확인날짜=}}</ref> [[김수철 (가수)|김수철]]은 당시 유재하의 앨범을 듣고 "노랫말이 너무 빼어났다"는 느낌이 앞섰다고 술회한다.<ref>{{웹 인용|url=http://music.naver.com/promotion/specialContent.nhn?articleId=4559&isIng=ALL&page=4|제목=한국 대중음악계의 찬란한 보석|성=|이름=|날짜=|웹사이트=네이버 뮤직|출판사=|확인날짜=}}</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