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1 개의 출처 구조, 0 개의 링크를 깨진 것으로 표시 #IABot (v2.0beta4)
편집 요약 없음
31번째 줄:
=== 출생 ===
1895년 11월 15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헤센 대공녀 출신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1872년)|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탄생은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의 큰 기쁨이었다. 그녀가 태어날 때 니콜라이 2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인용문2|내가 영원히 기억될 날이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정각 9시에 들렸고, 우리 모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하느님이 보내주신 이 아이의 이름을 올가라고 지었다!}}
 
올가의 이름은 러시아어로 '신성한'(Holy)이다. 가족들은, 그녀는 올리쉬카(Olishka, Olyshka), 올랴(Olya)라고 불렀다. [[니콜라이 2세]]는 올가를 매우 애지중지하였으며, 아기인 그녀를 보며, 큰 행복에 빠지곤 했다.
 
줄 39 ⟶ 41:
 
니콜라이는 종종 올가와 같은 해에 태어난 육촌누이이자 조카인 이리나와 비교를 하였다.
 
{{인용문2|1896년 3월 21일, 미사를 드린 후에 딸들을 성찬식에 데리고 갔다. 우리 아이(올가)는 조용히 하였으나 이리나는 약간 울었다.}}
 
줄 48 ⟶ 51:
그녀의 따뜻한 성품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알렉세이 로마노프|알렉세이]]가 6살인 무렵, 보이 스카우트 행진을 보러갔는데, 어린 알렉세이는 보이 스카우트의 행진을 매우 재미있게 바라보다가 자신도 저기에 참여하고 싶다고 떼를 쓰며 주변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때 올가가 이를 저지하자, 알렉세이가 올가의 뺨을 힘껏 올려쳤다. 이 상황에 모두는 놀라 어쩔 줄 모르고 있었지만, 올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알렉세이를 향해 웃고 있었다. 알렉세이는 건강하지 못한 신체적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에게서 창출되는 행동들도 역시 매우 미숙하고 병약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대신들 사이에서는 올가를 황위 계승자로 생각할 정도였다. 올가는 어렸을 때부터 통솔력이 뛰어났으며 [[승마]]를 즐겨, 17살때 기마대장(騎馬隊長)을 맡은 적도 있었다.
 
올가가 성년이 되어 갈 무렵, 어머니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1872년)|알렉산드라]]는 아픈 [[알렉세이 로마노프|알렉세이]]를 바라보며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그러자 알렉산드라 황후의 친구인 [[안나 비루보바|안나]]가 시베리아 수도승 '[[그리고리 라스푸틴|라스푸틴]]'을 데리고 왔다. 라스푸틴은 매우 못생겼고, 수염이 매우 길었다. 통찰력이 뛰어났던 올가는 어머니 알렉산드라에게 그를 믿지 말라고 충고하였으나, 어머니 알렉산드라는 그를 광적으로 믿었다. 매일 황녀들을 이끌고 라스푸틴을 찾아갔다. 올가는 라스푸틴에 의해 어지럽혀지는 러시아를 보며 낙담하였고, 전장에 나가있는 아버지 [[니콜라이 2세]]를 돕고 싶어 하였다.
 
라스푸틴은 매우 못생겼고, 수염이 매우 길었다. 통찰력이 뛰어났던 올가는 어머니 알렉산드라에게 그를 믿지 말라고 충고하였으나, 어머니 알렉산드라는 그를 광적으로 믿었다. 매일 황녀들을 이끌고 라스푸틴을 찾아갔다. 올가는 라스푸틴에 의해 어지럽혀지는 러시아를 보며 낙담하였고, 전장에 나가있는 아버지 [[니콜라이 2세]]를 돕고 싶어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기 두 달 전, 가족들과 함께 루마니아에 방문하였는데, 이때 올가와 루마니아의 황태자였던 [[카롤 2세|카를]]과의 혼담이 오고 갔다. 하지만 카를은 바람둥이에다가 풍기문란하여 올가는 그와의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 올가는 루마니아로 가는 길에 이렇게 말하였다.
 
{{인용문2|나는 러시아인이고, 영원히 러시아에 남을 거예요!}}
 
그 뒤 영국의 [[에드워드 8세|에드워드 왕자]]와도 혼담이 오고갔지만, 성사되지 못하였다.
 
줄 71 ⟶ 76:
== 같이 보기 ==
* [[니콜라이 2세]]
* [[아나스타샤 로마노바]]
* [[타티아나 로마노바]]
* [[마리아 로마노바]]
* [[OTMA]]
* [[라스푸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