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독립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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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간트 협약}}
[[1573년]], 네덜란드의 반란이 지속되자 에스파냐는 알바 공을 [[레퀴상스]]로 교체하였다. 레퀴상스는 에스파냐와 네덜란드 양 진영에 모두 호의적인 정책을 취하려고 애썼다. 한편 [[1575년]] 에스파냐는 파산상태에 빠졌다. 이로 인해 용병의 급여가 지급되지 않자 에스파냐의 군대는 당연히 쇠약해 졌으며 [[엔프워프]]에서 약탈을 자행하였다. "에스파냐의 약탈"이라 불리는 이 약탈은 반군 측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일조하였다.
[[1576년]] 저지대 지방에서 에스파냐를 축출하기 위해 저지대 지방의 북부와 남부가 서로간의 종교의 차이를 불문하고 협력하기로 하는 [[간트 협약]]이 체결되었다. [[에스파냐]]의 [[엔트워프]] 약탈을 지켜본 로마 가톨릭 교회 교도들은 외국 군대에 의해 약탈당하느니 반군에 가담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에 대한 충성을 유지했다. 한편, 에스파냐는 [[에스파냐령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막대한 [[금]]을 가져올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군대를 편성하였다. 사령관은 파르마 공작 [[파르마의 알렉산드로알레산드로 페르네제파르네세|페르네제알레산드로 파르네세]]였다.
 
=== 아라 동맹과 위트레흐트 동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