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량 (1519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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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신교위]]로 재직 중<ref>[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MN_6JOa_1552_003311&isEQ=true&kristalSearchArea=B 이량: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ref> 과거에 응시하였다. [[1552년]](명종 7) 스승인 [[정사룡]]이 고시관이 되어<ref name="gossi01">[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MN_6JOa_1552_003311&isEQ=true&kristalSearchArea=B 이량: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2]</ref> [[과거 시험]]을 주관하게 되자, 그의 후원으로 식년문과에 응시하여 갑과에 장원으로 급제<ref name="ee01">[http://www.rfo.co.kr/pachong/view.php3?mode=view&inmul_code=&page=&type=serache&sermun=공거&qu=content&mode1=&idcount=302&page=1&qu1=name 이량]</ref>하였다. 이때 그의 스승인 [[정사룡]]이 미리 시험 주제인 전(箋)의 제목을 양에게 알려주어 그로 하여금 오랫동안 글을 구상하게 해서 시험에 합격하게 했으므로 물의(物議)가 떠들썩하였다.<ref>명종실록 12권, 명종 6년(1551 신해 / 명 가정(嘉靖) 30년) 10월 13일(정묘) 1번째기사 "근정전에서 정시를 보여 생원 이양이 수석을 차지했으나 물의가 생기다"</ref> 그 뒤 주서(注書)가 되었다.<ref>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7a3189a</ref>
 
한편 그의 자부매부 [[심강]](沈鋼)이 그를 [[홍문록]]에 추천하였다. [[심강]]은 아버지 [[심연원]](沈連源)에게 그를 홍문록(弘文錄)에 들도록 하자고 추천하자 심연원이[[심연원]]이 “너의 처남 이양이 만약 청반에 들게 되면 많은 당류(黨類)를 심어 나라를 그르치지 않겠느냐?”며 반대하였다.<ref>명종실록 25권, 명종 14년(1559 기미 / 명 가정(嘉靖) 38년) 1월 9일(신사) 3번째기사</ref> 그러나 스승 [[정사룡]] 등의 추천으로 결국 홍문록에 들게 된다.
 
[[1552년]](명종 7년) [[6월]]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를 거쳐 [[경기도]]도사(都事)로 나갔다. [[1555년]] [[9월]] 스승 [[정사룡]]의 추천으로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ref name="ee01"/> 일찍부터 그가 왕족이라는 배경을 본 김백균(金百鈞), 이언충(李彦忠), 정척(鄭惕), 조덕원(趙德源) 등이 그와 가까이 지내게 된다. 또한 환관 정번(丁蕃) 역시 그와 가까워졌는데, 정번을 통해 대궐의 대소사를 쉽게 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