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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오'''(奇子敖, [[1266년]] ~ [[1328년]])은 고려 후기의 [[무신 (관직)|무관 관료]]이다.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간 딸 [[기황후]]가 제1황후가 되면서 [[원나라]]로부터 겸덕승화육경공신(秉德承和毓慶功臣)을 추증(追贈)되고 영안왕(榮安王)에 추봉되었으며, 시호는 장헌(莊獻)이라 하였다.
 
== 생애 ==
본관은 [[행주 기씨|행주]]이며, 증조부는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기윤숙]]이며 [[원나라]] [[원 혜종]]의 제2황후 [[기황후|기씨]]의 아버지이다. 처는 전서를 지낸 [[이행검]]의 딸 이씨이다. 음보(蔭補)로 산원(散員)이 된 뒤 총부산랑(摠部散郎)에 이르렀다. 딸이 [[원나라]]에 궁녀로 가서 [[1340년]] ([[충혜왕]] 복위 1)에 제2황후가 되자, [[원나라]]로부터 병덕승화육경공신(秉德承和毓慶功臣)에 추증되고 영안왕(榮安王)에 봉해졌으며 그의 묘비는 한림학사 구양현(歐陽玄)이 쓰도록 하였다. 시호는 장헌(莊獻)이다.
 
할아버지 기홍영(奇洪潁)은 좌우위보승낭장, 은청광록대부 상서좌복야에 이르렀는데 그의 딸이 원나라 황후가 되면서 인왕(仁王)의 시호를 받았다. 기홍영은 [[공예왕후]]의 여동생과 혼인하였으며, 기홍영의 장남이자 그의 큰아버지 기온은 [[고려 고종]]의 서녀와 혼인하여 부마가 되었다. 아버지 기관은 처음 이름은 장이었다가, [[충선왕]]과 이름이 같다 하여 기관으로 개명하였다. 봉익대부 삼사우사 응양군 상장군을 지냈는데, 아버지 기관의 시호는 실전되어 미상이다.
 
처는 전서를 지낸 [[이행검]](李行儉)의 딸 영안왕대부인 이씨이다. [[음서 제도|음보]](蔭補)로 관직에 올라 산원(散員)이 된 뒤, 다른 벼슬들을 두루 거쳐 총부산랑(摠部散郞)에 이르렀다. 선주부사(宣州郡使)로 나갔다가 부사로 재직 중 63세로 사망하였다. 딸이 [[원나라]]에 궁녀로 가서 [[1340년]] ([[충혜왕]] 복위 1)에 제2황후가 되자, [[원나라]]로부터 병덕승화육경공신(秉德承和毓慶功臣)에 추증되고 영안왕(榮安王)에 봉해졌으며 [[원나라]]에서는 그의 묘비는 한림학사 구양현(歐陽玄)이 짓고, 쓰도록 하여 하사하였으나 현재는 실전되었다. 시호는 장헌(莊獻)이다.
 
그의 부인 이씨(李氏)는 영안왕대부인(榮安王大夫人)에 봉작하고 그 문을 정표(旌表)하여 정절(貞節)이라 하였으며, 자주 사신을 보내 옷과 술을 하사하였다.
 
== 가족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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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 [[기황후]](奇皇后, 1315~1369)
**** 외손자 : [[원 소종]](元 昭宗, 1338~1378 재위:1370~1378)
* 장인 : [[이행검]](李行儉, [[1224년]] ~ [[13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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