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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일단 외형상 고도로 중앙 집권화 된 통치 조직이 정비되어 국가 권력이 촌락 내부에까지 깊숙이 뻗쳤다. 하지만 국가 권력이 촌락 사회에 작용한 정도는 아마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어떻든지간에 삼국 시기와 비교했을 때 집권력이 현저하게 강화되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정비된 통치 조직을 바탕으로 왕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귀족 회의는 존속하였으나 권능이 크게 약화되었고 왕은 전제군주의 면모를 지녔다. 유교적 정치이념이 전면에 내세워졌고, 충과 효가 주요한 덕목으로 강조되었다. 왕호도 유교식이어서, 6세기에서 7세기 중반까지의(中古期) 불교식 왕명과 차이를 보였다. 《[[삼국사기]]》에서는 신라사를 시기 구분하면서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에서부터 그의 직계 후손인 왕위를 이어간 통일기의 1백여 년간의 시기를 중대(中代)라 하였다. 이런 구분은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관료 조직이 정비되고 왕권이 전제화되었지만, 중대의 집권체제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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