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턴 워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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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군이 낙동강 전투에 참전했다는 내용은 허위사실로 삭제. 차량 사고 내용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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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2| "여기서 더 후퇴하면 내가 장례식을 치뤄주지 !!" 《1950년 7월 29일 낙동강 전선 시찰 후》 }}
 
[[대한민국]]에 부임 당시 미숙했던 장병들만으로 극도로 불리했던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면서 그는 [[낙동강 방어선]]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방어하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이에미국에서 반대여론이 부하가 반론을 제기하자, 옆에 있던일자 [[더글라스 맥아더]]가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라는 말로 워커 중장의 지휘명령을 옹호해줬다. 이후 한반도에 상륙한 [[타흐신 야즈즈]]가 이끄는 [[터키 여단|터키 지원군]]의 지원을 받아, 낙동강 방어선을중장을 방어해냈다옹호했다.
 
=== 죽음 ===
1950년 12월 23일, 훗날 육군 대장이 되는 아들인 [[샘 S. 워커]] 대위의 [[은성 훈장|은성 무공 훈장]] 수상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던 중 [[의정부]] 남쪽의 [[양주군]] 노해면(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자리)에서 [[교통 사고]]로 죽었다순직했다.<ref>당시 지휘관용 차량인 M38은 현재 미군이 사용하는 험비형과는 달리 지프형은 현재 민수용인 랭글러가 보여주듯 차고가 높아서 중심점이 높다. 그로인하여 서스펜션이 불안하였는데 결국 이문제로 차량이 전복이되었고 결국 이문제로 한국전쟁이후 미군은 당시 지휘관용 차량을 차고를 내리는 형식을 가진다. 그후 70~80년대 험비 즉 고기동전술차량은 차고를 낮추고 바퀴를 키워 전복이 되지 않도록 개선된다.</ref> 그가그는 지프를 타고 있던이동 지휘관 지프는대한민국 빠른육군 속도로제6사단 움직이는차량과 민간인추돌하여 차량을차량이 피하다가전복되는 굴러떨어졌으며,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시신은 아들에 의해 수습되어운구되어 미국 본토로 보내졌다. 이듬해 1951년 1월 2일, 알린턴 국립 묘지에서 화장되었으며, 사후 [[4성 장군|대장]]으로 추서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979575 |제목=[6·25 전쟁 60년&#93;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17) 떨어진 6·25의 별- 중앙일보 뉴스 |저자=백선엽 |출판사=동아일보 |날짜=2010-01-22 |확인일자=2012-10-28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20707094945/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979575 |보존날짜=2012-07-07 |확인날짜=2010-04-01 |깨진링크=아니오 }}</ref>
 
월튼 워커 중장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8 군 사령관직은 [[매슈 리지웨이]] 중장이 후임으로 취임하였다.
 
== 가족 ==
그의 외아들 [[샘 S. 워커]] 대위는 한국전쟁 당시 일선 앞에서 진두지휘하며소총중대장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이후, 샘 워커 대위는 미국의 군사 역사상 최연소 대장으로 진급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미육군 역사상 유일하게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대장에 진급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