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주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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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허무주의적인 시대 풍조는 드디어 러시아의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1861)의 청년 주인공 바자로프에 의해 니힐리스트라는 하나의 인간상으로까지 결정(結晶)되었다. 철저한 과학적 실증주의 입장에서 일체의 기성 질서나 가치의 권위를 부정하는 이 자유주의를 투르게네프가 '니힐리스트'라고 명명한 이래로 니힐리즘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었다. 신인(神人) 예수에 대한 소박한 신앙을 거부하고 스스로 인신(人神)의 입장에서 서려고 하는 니힐리스트들의 삶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도스토옙스키]]의 영필(靈筆)에 의해 신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무서운 인격분열의 절망을 초래하는 것으로서 날카롭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사조로서의 니힐리즘의 저류를 철저히 적발하여 이를 명확한 하나의 사상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프리드리히 니체|니체]]로서, 니체는 힘있는강한 정신을 가진 자가 힘없는약한 정신을 가진 자를 지배하고 고귀한 자가 비소(卑小)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본래의 가치 체계라고 하는 권력의지설(權力意志說)의힘에의 의지 설의 입장에서 니힐리즘을 분석하여 '수동적(受動的) 니힐리즘'과 '능동적(能動的) 니힐리즘'의 두 유형을 발견한다.
 
'수동적 니힐리즘'은 약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서 쇠퇴하고 허무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회피하고 찰나적인 향락주의나 무관심한 이기주의 등 퇴폐적 삶에 의해 공허감을 채워보려는 것이다. 여기서 니힐리즘은 잠재적인 형태로 예감될 뿐이며 그 참된 극복은 무한히 연기된다. 이에 대해 소모적인 현실 도피의 삶을 거부하고 니힐의 병근(病根) 한가운데로 적극 개입함으로써 허무의 현실을 초극하려는 것이 '능동적 니힐리즘'이다. 이러한 능동적 니힐리즘의 입장에서 모든 현존하는 가치나 질서가 뽐내는 절대적 권위를 파괴해 갈 때, 거기에 새로운 가치를 자유로이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싹튼다. 우상(偶像)의 가면을 벗기는 이기(利器)로서 무(無)를 내세움으로써 무를 단순한 생의 소모 원리(消耗原理)로부터 생의 적극적인 창조 원리로 전환시켜 나가는 '능동적 니힐리즘'이야말로 니힐리즘의 지배 밑에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당연한 생활 방식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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