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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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옹호 정책==
찰스 1세의 통치기는 [[기독교개신교와 카톨릭]]다운간의 갈등으로갈등이 가득했다. 의회와 여론이 반대하는데도 영국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를 탄압하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자인 [[프랑스의 헨리에타 마리아|헨리에타 마리아]]와 혼인한 찰스1세는 진일보해 [[영국 성공회]] 대주교인 [[리처드 몬타규]]와 [[윌리엄 로드]]와 유대를 강화했다. 찰스1세는 [[윌리엄 로드]]를 [[캔터베리 대주교]]에 임명했다. 대주교 윌리엄 로드는 [[성공회]]에서 [[감사성찬례]]와 [[성사]] 집전에 사용하는 [[성공회 기도서]]를 개정했다.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에게 장로교회의 예배 모범을 버리고 영국 국교회의 기도서를 채택할 것, 영국 고교회의 의식에 따라 예배드릴 것, 장로정치를 폐지할 것, 교회 문제에 캔터베리의 지시를 받을 것, 그리고 자신이나 [[윌리엄 로드]]의 지시를 받는 감독의 명령에 따를 것을 명하였다. <ref>오덕교《종교개혁사》(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P443)</ref>찰스 1세의 많은 신하는 개정된 기도서 내용이 [[로마 가톨릭 교회]]와 유사하다고 느꼈다. 이 때문에 의회의 반대파들은 "찰스 1세가 기독교권내 모든 개신교 교회의 붕괴를 목적으로 강력하고 전국적인 조직을 만들려고 한다"며 "미약하지만 반드시 이를 저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ref>브랜든 심스《Europe, 1453년부터 현대까지 패권투쟁의 역사1》(애플미디어,P57)</ref>스코틀랜드의 장로교 총회는 성공회 예배 의식으로 더럽혀진 교회를 정화하고, 장로교 원리에 따라 예배를 드리기로 결의하였으며, 찰스1세가 임명한 전체의 교직 구조를 거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