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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음력 4월 황제 칭호와 더불어 국호를 청(淸), 연호를 [[숭덕]]이라 고친 청 태종 홍타이지는 조선의 도전하는 태도에 조선을 원정하려고 군을 조직할 준비를 서둘렀다.
== 전쟁의 발발 ==
[[1636년]] [[12월 28일]] 청 태종이 이끄는 군대 약 10만이 압록강을 건너 남하하자 의주부윤(義州府尹) [[임경업]]은 백마산성에서 청나라 군대의 진로를 차단하고 기세를 꺾어 놓을 만반의 준비를 마쳐놓았다. '''하지만 청군은 모든 산성을 우회해서''' ,[[안주시|안주]], [[평양특별시|평양]]를 함락한 후점령했고, 불과이후 4일만에1637년 1월 2일인 개성에 도착했고,도착했다. 이후에도그리고 숨 돌릴 틈 없이 수도인 한성을 향해 빠르게 진군하였다.
이 때 청군의 남하 소식을 듣고 인조와 조정은 강화도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청군이 강화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김포,통진을 점령하는 바람에 강화도로 가는 길이 차단되었고, 결국 [[1637년]] [[1월 9일]] 밤, 강화도 보다 가까운 남한산성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근왕병의 소집과 실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