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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스웨덴의 구스타프 6세 아돌프]]
|자녀 =
|왕가 = 혼전:[[바텐베르크 가문바텐베르크가]]<br />혼후:[[베르나도트 왕가]]
|아버지 = [[바텐베르크 공자 루이스]]
|어머니 = [[헤센 대공녀 빅토리아]]
루이즈는 [[헤센 대공국]]에서 ''바텐베르크의 루이즈 공녀(Princess Louise of Battenberg)''로 태어났다. 루이즈의 아버지는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루이스)였으며 어머니는 [[헤센 대공녀 빅토리아]]였다. 그녀의 세례명은 루이즈 알렉산드라 마리 이레네였다.<ref>루이즈의 세례명중 알렉산드라는 가끔 이모인 [[헤센의 알릭스|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이름을 따왔다고 추측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루이즈가 태어났을때 알렉산드라 황후는 아직 러시아 황제와 결혼하기 전이었고, 이때의 이름은 알릭스(Alix)였다. 알릭스라는 이름은 어머니 앨리스 공주의 이름에서 따온것이다. 루이즈의 알렉산드라라는 세례명은 어머니의 외숙모인 알렉산드라 왕비의 이름이거나 루이즈가 태어나기전에 죽은 할아버지 알렉산더의 이름에서 따온 것일것이다.</ref>
 
루이즈의 친가였던 바텐베르크 가문은바텐베르크가는 헤센 대공가에서 갈려나온 방계 가문이었다. 이 가문은 루이즈의 할아버지인 헤센의 알렉산더가 왕족이 아닌 율리아 하우케와 귀천상혼하면서 생긴 가문이었다. 귀천상혼한 가문이기에 헤센 대공가의 상속권은 없었으며 아이들은 어머니의 지위인 바텐베르크 공/공녀의 지위를 이어받았다. 루이즈의 고모 마리는 에르바흐-쇤베르크 공비가 되었으며, 큰 숙부인 알렉산더는 불가리아의 통치자가 되었다. 둘째 숙부인 하인리히는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공주와 결혼했으며, 하인리히의 딸은 현 스페인 국왕의 할머니가 되는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에우헤니아|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이다. 막내 숙부였던 프란츠 요제프는 몬테네그로의 안나와 결혼했다. 안나의 언니들은 러시아의 대공비도 있었고, 이탈리아의 왕비도 있었다.
 
루이즈의 외가는 헤센 대공가였다. 외할버지는 헤센의 대공이었던 [[루트비히 4세 폰 헤센 대공|루트비히 4세]]였고 외할머니는 [[영국의 앨리스]] 공주였다. 이 때문에 루이즈 역시 수많은 왕가와 친척관계였다. 루이즈의 큰 이모인 [[헤센의 엘리자베트|엘리자베트]]는 러시아의 대공비가 되었으며, 둘째이모인 이레네는 독일의 왕자비가 되었다. 외삼촌인 에른스트 루드비히는 헤센의 대공이었으며, 막내 이모인 [[헤센의 알릭스|알릭스]]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후가 된다.
 
=== 스웨덴 ===
루이즈가 결혼했던 때, 스웨덴 궁정에서는 중심이 되는 여성이 없었다. 루이즈의 시어머니였던 [[바덴의 빅토리아]]는 건강이 좋지 못해서 자주 외국에 나가있었으며, 구스타프 아돌프는 부인인 [[코넛 공녀 마거릿]]을 잃고 난 뒤었고, 구스타프 아돌프의 동생 빌헬름 왕자는 부인인 러시아의 마리야 표도로브나 여대공과 이혼한 상태였다. 결국 루이즈는 결혼과 동시에 왕실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으로 궁정을 이끌어야 했다. 다행히 루이즈는 다른 바텐베르크 가문바텐베르크가 사람들처럼 언어에 소질이 있었고, 스웨덴어를 빨리 익힐수 있었고 여러가지 사업에 나아가 연설을 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1950년 루이즈의 시아버지인 구스타프 5세가 사망하자, 루이즈는 스웨덴의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소심했던 루이즈는 자신이 "폐하" (Your Mejesty)라고 불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더 재미난 이야기가 [[조지 6세]]의 장례식때 있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루이즈앞으로 "스웨덴 왕비용 의전 차량"이 도착했다. 문제는 루이즈가 그 차량이 자신을 위한 차량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