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시대 (중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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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은 더 능력있는 사람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유변 대신 유협을 황제의 자리에 앉혔다. 낙양으로 가는 도중에 동탁은 전쟁통에 도망나온 유변과 유협을 지키고 있던 군대를 만났다. 동탁이 거만하게 행동하자 유변은 겁을 먹었으나 유협은 침착하고 권위있게 동탁에게 그들을 보호하라고 명했다.
 
동탁은 처음에는 한나라의 권위를 세우고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그의 정치적인 능력은 군사적 능력보다 훨씬 떨어졌다. 그의 행동은 점차 폭력적이고 권위적으로 변했으며, 그에 반대하는 사람을 모두 처형하거나 멀리 유배를 보냈고, 황제에 대한 존경 역시 점차 없어졌다. 그는 왕실의 예절을 모두 무시했으며, 궁궐에 무기를 가지고 다녔다. 190년에 [[반동탁 연합군]]이 조직되었다. 191년 5월, [[손견]]에게 패배해 휘하 부하 중 [[화웅]]을 잃는 등 상황이 악화되었으며 계속된 패배에 결국 동탁은 헌제를 데리고 [[장안]]으로 도망쳤다.
 
동탁은 낙양에 살던 수백만의 거주자들을 장안으로 강제이주 시키면서 그의 정치적 무능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그는 반동탁 연합군이 낙양을 점령하지 못하게 낙양을 불태웠고 결국 그 당시 중국에서 가장 큰 도시를 불태우는 일을 저질렀다. 게다가 그는 군사들에게 지나가면서 보이는 마을의 주민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했다. 군사들은 주민들의 목을 베어 장안으로 가져왔고 이를 전쟁에 승리한 것 처럼 보이게 하는 전리품으로 사용했다. 1년후에 동탁은 [[왕윤]]과 [[여포]]의 [[쿠데타]]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