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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파일:Groundbreaking ceremony of Gyeongbu Line at Busan, 1901.jpg|섬네일|경부선
[[파일:Formal Opening Inside Of Gyeongbu Train.png|섬네일|개통식 ([[1905년]] [[5월 25일]])]]
[[경인선]]을 부설한 [[일본]]은 [[대한제국]]의 철도망을 장악하기 위하여 한반도의 2대 간선축인 [[서울특별시|서울]] - [[부산광역시|부산]]과 서울 - [[신의주시|신의주]]를 잇는 철도 부설권을 얻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1898년 9월, 이윽고 부설권을 취득한 일본은 '경부철도'를 설립하고 [[1901년]] 6월 일본은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세워, [[8월
철도 예전선 주위에 사는 조선인들은 토지 징발과 인력 동원, 물자조달 등을 좌우한 일본군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노반공사에 농번기 임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동원되었으며, 식량과 가축에 대한 강제 징발도 수시로 자행되어 유랑민이 속출하였다. 대한매일신보는 '철도가 통과하는 지역은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이 남아 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 집에 아홉 집은 텅비었고, 천리 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하였다'고 보도했다. 시흥과 파주, 곡산과 평산 그리고 평양에서 조선인들은 이에 항의하는 싸움을 벌였고, 선로상에 큰 돌을 놓아 저항하였다. 이런 사건의 주모자는 잡히는 대로 사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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