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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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딜런은 그리니치빌리지의 수많은 클럽과 카페에서 노래를 불렀다. 레퍼토리는 주로 흑인 델타 블루스, 우디 거스리, 레드벨리와 같은 고전 포크 계열의 노래였다. 때때로 자작곡도 한두 곡씩 끼워넣었다. 딜런의 창법은 점점 더 우디 거스리와 닮아갔고, 외양적으로도 그와 흡사한 스타일(덥수룩한 헤어 스타일과, 낡은 플란넬 셔츠, 색이 바랜 블루진)을 추구했으며, 가사가 내포하는 사회의식 또한 견고해져 갔다.<ref name=":3" /> 그러다 유명 음반 제작가 [[존 하몬드]]의 눈에 띄어 [[콜롬비아 레코드]]를 통해 데뷔하게 된다.<ref name=":0" /> 데뷔 음반 《Bob Dylan》(1962)은 전혀 팔리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우연히 이 음반을 듣게 된 한 사내가 딜런에게 관심을 표했다. 그는 바로 훗날 록계를 대표하는 거물 매니저로서 일세를 풍미하게 될 앨버트 그로스만이었다.
[[파일:Bob_Dylan_in_November_1963.jpg|대체글=Dylan with his guitar onstage, laughing and looking downwards.|왼쪽|섬네일|1963년 11월의 밥 딜런|250x250픽셀]]이후 미대 지망생인 수즈 로토로를 떠나보낸 딜런은 괴로워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괴로워하면서도 그는 미친 듯 곡을 썼다.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Masters of War〉, 〈Positively 4th street〉, 〈Blowin' in the Wind〉 등이 모두 이때 만들어졌다. 두 번째 음반 《The Freewheelin' Bob Dylan》에 이 곡들이 수록되었다. 음반 재킷에는 눈이 내린 날 그리니치빌리지에서 수즈와 팔짱을 낀 채 걸어오는 사진을 실었다. 자작곡 〈Blowin' in the Wind〉은 [[피터, 폴 앤 메리]]가 불러 빌보트 차트 1위에2위에 올라 그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와 소련 시인 [[예브게니 옙투셴코]]와 비교 평가하는 글을 실었다. 이 노래는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히피들의 혁명가가 되었다.<ref name=":0" /> 음반의 성공을 통해 당시 활발했던 사회적 저항 운동의 상징적인 음악가가 되었으며, 특히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등 [[비트닉]]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그의 시적인 가사는 [[대중음악]]에서의 가사의 수준을 끌어 올렸다.
 
==== 일렉트릭으로의 전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