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조 평화 원칙"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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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조 평화 원칙'''(Fourteen Points)은 [[1차대전제1차 세계 대전]] 종전에 쓰인 [[평화]]원칙 선언이다. 이 원칙은 [[1918년]][[1월 8일]]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국회]]연설에서 밝혔다. 유럽인들은 대체로 환영했으나 핵심 [[협상국]] 동료들([[클레망소]], [[로이드 조지]], [[비토리오 오를란도]])은 [[윌슨]] [[이상주의]]의 적용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치머만 전보]] 때문에 [[미국]]은 [[1917년]][[4월 6일]] [[동맹국]]에 대항해 [[협상국]]으로 참전했으나 [[윌슨]]은윌슨은 오래 지속되는 [[유럽]][[열강]]들 사이의 긴장에 관여하길 피하고 싶었고 참전하더라도 [[내셔널리즘]] 갈등 및 야망과는 또다른 문제로 보고 싶어했다. [[볼셰비키]]가 [[협상국]] 사이의 비밀조약들을 공개한 후 도덕적 목표에 대한 요구는 더 중시됐다.
 
[[윌슨]]의윌슨의 연설은 많은 국내 [[진보주의]] 이념들을 낳았고 외교정책([[자유무역]], 공개조약, [[민주주의]], [[자결권]])으로 이어졌다. 사흘 전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가 [[영국]]의 [[전쟁]]목표에 대한 연설을 했다. 이는 [[윌슨]]윌슨의 연설과 다소 비슷했지만 [[추축국]] 보상을 제안했고 [[오스만 제국]] 비[[터키]] 대상들에 대한 약속이 더 모호했다.
 
==내용==
14개조 평화 원칙 내용은 다음과 같다.<ref>[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treeId=010701&tabId=03&levelId=hm_123_0020 우리역사넷 - 미국 대통령 윌슨의 14개조 평화 원칙 선언]</ref>
 
1. 강화 조약은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또 공표되어야 한다. 그 체결 이후에는 어떠한 종류의 비밀 회담도 있어서는 안 된다. 외교는 항상 솔직하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반응==
===[[협상국]]===
[[로이드 조지]]가 [[윌슨]]의윌슨의 생각과 비슷한 연설을 했을 때 [[윌슨]]은윌슨은 망설였다. [[로이드 조지]]는 연설 전에 '위대한 해외 자치령들' 지도자들과 논의했고 [[캐나다]], [[뉴펀들랜드 자치령]],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널리 인정됐다. [[윌슨]]윌슨의 비서비서였던 에드워드 마우스는 [[윌슨]]을윌슨을 설득해서 연설을 하도록 했고 후일 더 기억됐다. 이 연설은 다른 [[협상국]] 지도자들과 사전 협의되지 않았다. [[클레망소]]는 이를 듣고 빈정댔다.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국제연맹국제 연맹]]이 [[윌슨]] 씨가 내놓은 14개조 평화 원칙 연설만큼 거창하고 의미없는 문서 상에 세어지면 외교적 휴지통에 조금 더 추가할 뿐이다. 14개조 평화 원칙 대부분은...아무것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의미하도록...해석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노벨상]]===
[[윌슨]]은우드로 윌슨은 [[평화]]를 위한 노력을 한 공로로 [[1919년]] [[노벨평화상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 각주 ==
{{각주}}
 
[[분류:1918년 국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