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의 역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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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m 모바일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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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칸토어는 집합론을 세상에 내어 놓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제논의 역설 이후 금기 시 되어온 무한의 개념을 집어 들었다. 당연히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무한한 집합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당시 수학자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동년배인 수학자 푸앙카레는 칸토어의 집합론과 무한 수를 심각한 수학 질병이라고 불렀고, 칸토어에게 중요했던 선배 수학자 크로네커는 그를 과학 사기군, 배교자, 젊은이를 지적 타락으로 이끄는 자라고 매도했다. 철학자들도 이러한 비난에 가세했고, 성직자들은 그의 시도를 신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여겼다. 그리고, 러셀의 역설과 [[베른의 역설]]과 같은 역설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편, 그의 당대 일부 수학자들은 칸토어 집합론의 공리화를 시작한다. [[유클리드의 원론]](elements) 에 나오는 그 [[공리]]화 방법론을 집합론에 도입한 것이다. 집합론을 체계화 시킨 측면도 있지만, [[러셀의 역설]]을역설을 비롯한 역설들이 주장하는 칸토어 집합론이 지닌 모순들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도 있다. 오직 이러한 역설들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계급의 공리]](Axiom of class)는 그 필요성이 의문일 뿐만 아니라, 칸토어의 집합론에 심각한 제약을 가한다.
 
== 응용 방면과 관련 주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