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 기미야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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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구단에서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기에 이를 계기로 ‘우승 청부사’라고 불렸다.<ref name="daily"/><ref name="sponichi"/>
 
현역 시절에 영양가가 높은 식사를 하거나 녹즙을 마시는 등 컨디션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ref name="asagei42872"/> 그렇게 하게된 이유는 부인 마사코와 결혼한 이후에 시작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매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숙취에 절어 등판하는 등 불규칙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ref>[http://style.nikkei.com/article/DGXBZO55632600Q3A530C1000000 {{lang|ja|「あいつ終わったな」の恐怖}}] - 닛케이 스타일, 2017년 1월 6일 확인</ref> 그것이 누적되면서 1988년 시즌 도중에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고 이듬해 1989년에는 간기능 장애가 일어났다. 의사로부터 “불규칙한 생활 습관이 계속되면 선수 생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라고 전해들을 정도의 상태가 심각했고 1989년 시즌에는 몇 번이고 2군에 내려가는 일이 반복되자, 4승 8패와 평균 자책점 4.96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남겨 전력외 통보까지 각오했다고 한다. 같은 해 시즌 종료 후 부인 마사코와 결혼할 때 [[청혼|프로포즈]]는 ‘(야구를 그만두고)산에 틀어박혀서 살자’였지만 부인이 “남편이 다시 한 번 야구를 할 수 있는 몸을 갖추고 야구로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은퇴를 고심하고 있던 구도를 설득해 부부가 이인삼각으로 체질개선에 나섰다고 한다. 구도는 그 후 1년 간의 재활 훈련을 거쳐 부활했고 이후 컨디션 관리에 세심한 신경을 쓰게 됐다.<ref>《[[정보 라이브 미야네야]]》([[요미우리 TV 방송|요미우리 TV]]), 2010년 8월 6일 방송</ref><ref>[http://www.nippn.co.jp/entertainment/enjoy/wellness/1200316_2042.html {{lang|ja|坂本雄次の訪問!スポーツ人 vol.1 工藤公康さん}}] {{웨이백|url=http://www.nippn.co.jp/entertainment/enjoy/wellness/1200316_2042.html |date=20150916024839 }} - 닛폰 제분</ref>
 
[[1987년 일본 시리즈]]에서 요미우리에게 승리하기 직전 [[1루수|1루]]를 지키고 있던 기요하라가 울음을 터뜨린 것은 많이 알려진 에피소드였지만 이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9회까지 투구를 했던 사람은 구도였다. 구도는 기요하라를 보면서 ‘타자는 좌타자였던 [[시노즈카 가즈노리|시노즈카]]인데, 기요하라는 눈물 때문에 공이 잘 보이질 않아 인코스를 끌어당겨 타구가 1루로 향하게 되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1루수에게 타구가 날아오지 못하도록 하여 아웃코스로 승부하는 것을 택했다. 시노즈카를 바깥쪽의 [[슬라이더]]를 던지며 중견수 플라이로 잡고 헹가래 투수가 됐다. 이에 대해 구도를 형처럼 따랐던 기요하라는 본인의 저서에서 “울보인 동생에게 어디까지나 상냥한 성격을 가진 형이었다”,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 구도와 서로 부둥켜 안으면서 마음껏 울었다”라고 감사를 표하는 내용을 적었지만 구도 자신은 경기 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앞으로 남은 아웃카운트가 원 아웃이면 헹가래 투수였기에)승리의 포즈를 어떻게 취해야할지 마운드 위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기요하라가 우는 바람에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라고 대답하면서도 “그 눈물은 정말로 아름다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