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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의 사상에서, 딱히 전자가 후자와 모순되는 것은 아니에요. 자국주의적 관점과 아시아주의적 관점이 동시에 병존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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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니가타현]] [[사도 섬]] 출생으로 [[와세다 대학]]에서 청강생으로 강의를 들었고 낭만주의적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일본 초기 낭만주의 운동가들과 교류하였다. 일본의 초기 낭만주의 운동은 대체로 [[기회주의]]자들이 참여하였다.
 
일본의 정치 운동의 또 다른 조류는 국가주의 운동이었는데 이들은 독일 [[내셔널리즘]]의 영향을 받아서 [[권위주의]] 성격을 띠고 [[오토 폰 비스마르크|비스마르크]]주의 경향이 있었다. 기타 잇키가 청년기에 접한 사회주의 운동은사상은 보편적인마르크스주의와 [[좌파]]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함께 [[국가주의]], [[민족주의]] 성격을 띤 사회주의 분파나사회주의나 [[우익]] 낭만주의 성격을 띤 반자본주의였다반자본주의 역시도 포함하고 있다.<ref>Koschmann, J. Victor (1978). Authority and the Individual in Japan. University of Tokyo Press.</ref>
 
이것은 [[할 드레퍼]]가 제창하였고 "하향 사회주의"라고 일컬어졌으며, 상향 [[혁명]] 즉, [[민중]]의 자각과 단결을 이용한 사회혁명<ref><사회> 정치체제뿐만 아니라 생산관계와 사회제도 전반에 걸친 변혁을 목표하는 혁명으로서 대표할 만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프랑스 부르주아 혁명과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있다.</ref>을 중시하는 [[마르크스주의]]와 무관했다. 즉 기타 잇키에게 영향을 준 하향 사회주의는 국가주의적 성향을 띠는 낭만주의적 사회주의였고 [[자본주의]]에 반대하지만 [[마르크스주의]]와 무관했던 것이다.<ref>Draper, Hal (1963). The Two Souls of Socialism: socialism from below v. socialism from above. New York: Young People's Socialist League.</ref>
 
=== 초국가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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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식 국가사회주의 ==
기타 잇키는 저서인 《국체론 및 순정 사회주의》({{lang|ja|国体論及び純正社会主義}}, 1906)에서 자신의 [[국가사회주의]]의 개요를 제시하였다. 그는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와 노동계급에 의거한 사회주의를 비판했고 [[사회진화론]]에 입각하여 자신의 사회주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그의 두 번째 저서는 자신의 중국 체험을 토대로 쓴 《지나혁명외사》({{lang|ja|支那革命外史}})였다. 《국체론 및 순정 사회주의》는 [[앙리 드 생시몽]], [[로버트 오웬]], [[바뵈프]], [[카를 마르크스]] 등을 잇는 정통 사회주의와 달리, [[아나키즘]]과 초기 [[파시즘]]이 일정하게 혼합된 사상을 주창하는 서적이었다. 그러나, 재벌과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평등주의 사상을 내포했기에 일본 제국 당국은 이 서적을 금서로 지정하고 출판을 금하였다.<ref>Wilson, George M. Radical nationalists in Japan: Kita Ikki 1883-1937. Harw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1969</ref>
 
물론 기타 잇키가 파시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의 사상이 일반적인 좌익 사회주의의 조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타가 작성한 <일본개조법안대강>에도 제시되었듯, 기타의 사상은 농지개혁과 재벌해체, 노동자의 권리 보장, 성인 남성에게 보통선거권의 부여, 언론자유의 보장 등을 지지하고 있으며, 이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보편적인' 좌익 사회주의의 윤리와 크게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ref>北一輝(1923),《日本改造法案大綱》</ref>
심지어 일본의 평론가인 와타나베 쇼이치(渡部昇一)와 같은 논자는 기타를 공산주의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타잇키의 사상은 서구의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와 대단히 밀접하며, 유일한 차이는 국민주권의 근거로서 천황제를 옹호했다는 점 뿐이라는 것이다.<ref>渡部昇一(2008),《日本史百人一首》</ref>
 
== 초국가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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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군사 쿠데타로 현체제를 전복하고 헌법을 정지시키고서 의회를 해산하거나 재조직하여 '사악한 영향'을 배제하고 강력한 천황의 통치를 실시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체제는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개인의 재산에 한도를 부과하고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자영농을 육성하고 이것으로 일본의 국력을 키워 서구 세계에서 아시아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 천황기관설 ==
기타 잇키는 [[천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천황을 절대화하지도 않았다. 기타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절대 군주와 같은 존재로서 [[메이지 천황]]을 높이 평가했으며, 일본이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는데 있어 천황의 권위는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기타는 천황을 국가의 근본(國體)으로 여기는 기성 우익의 사고방식을 비판하며 천황 역시도 국가에 종속된 존재로서 국민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천황에 대한 이러한 기타의 입장은, 그가 2.26 이후 총살형에 처해지기 전 '천황폐하 만세'를 연호하자는 동료들의 권유를 무시한데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저술한 《일본개조법안대강》은 천황에 대한 기타잇키의 사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기서 기타는 천황가의 재산 감소, 화족제 폐지 등의 급진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 체포와 처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