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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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행정동의 기원은 [[일제 강점기]]의 정회(町會)에 두고 있다. 정회는 [[정 (행정 구역)|정]]([[일본어]] : 町), 정목(丁目)을 단위로 하여 설치된 부(府)의 말단협력 보조기관으로 예컨대 당시 [[경성부]]에는 280여 개의 정회가 있었다. 이 정회 제도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생긴 것으로 군정기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7-2-2-3-2-1.html |제목=행정기구 |확인일자=2008-04-22 |웹사이트=서울六百年史 |출판사=서울특별시 |확인날짜=2008-04-22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40906171147/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7-2-2-3-2-1.html |보존날짜=2004-09-06 |깨진링크=예 }} 이것은 종래의 행정기구는 종전대로 존속한다고 하는 1945년 9월 11일자의 포고에 따랐다.</ref> 정(町)을 동(洞)으로, 통(通)을 로(路)로, 정목(丁目)을 가(街)로 명칭 환원이 이루어질 때 동회로 개칭하여 사용하였고, 점차 동으로 명칭 일원화가 되었다.
{{웹 인용 |url=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7-2-2-3-2-1.html |제목= 행정기구 |확인일자=2008-04-22 |웹사이트= 서울六百年史 |출판사= 서울특별시}} 이것은 종래의 행정기구는 종전대로 존속한다고 하는 1945년 9월 11일자의 포고에 따랐다.</ref> 정(町)을 동(洞)으로, 통(通)을 로(路)로, 정목(丁目)을 가(街)로 명칭 환원이 이루어질 때 동회로 개칭하여 사용하였고, 점차 동으로 명칭 일원화가 되었다.
 
행정 구역 동은 초기에 법정동과 행정동을 구분하지 않았다. 법정동이 곧 행정 구역 단위였다. 그러나 세분화된 동은 행정력 낭비로 이어졌고,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여러 법정동을 묶을 필요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기존 동과 구별되는 명칭으로 동회(洞會)를 사용하였다(예: [[1965년]] [[대구광역시|대구]] [[중구 (대구광역시)|중구]]에서는 시내 번화가의 38개의 법정동을 동성동회, 남성동회, 종로동회, 북성동회, 서성동회로 나누었다). 반면 넓은 동을 나누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였고 이 경우에는 동구(洞區)를 사용하였다.(예: 1965년 [[대구광역시|대구]] [[서구 (대구광역시)|서구]]에서는 내당동을 내당동1구, 내당동2구, 내당동3구, 내당동4구로 나누었다.) 이렇게 행정동이 생겨났다. 1960년대 후반 동회는 모두 동으로 명칭 일원화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