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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은 [[청일전쟁]]으로 청나라에게서 조선을 빼앗고, [[러일전쟁]]에서도 예상밖으로 승리하여, 대한제국을 불법점령했다. 당시 동북아 최강대국은 러시아였지만, 하필 러일전쟁 중에 혁명이 일어나 내란상태에 빠지자, 일본과의 전쟁에서 철수해 버렸다. 당시 고종은 대한제국을 삼키려는 일본의 야망을 알아챘고 이를 견제하고자 러시아를 이용하고 있었다. 유명한 아관파천도 일본의 견제가 심해지자 이들의 힘이 미치지 않은 러시아 대사관으로 거취를 옮긴 것이다. 하지만 러일전쟁으로 급격하게 힘의 균형이 깨지고 더는 일본을 견제할 세력이 없어지자,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점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 이후, 미일전쟁인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자 일본에 불법점령당한 대한제국을 미넉검마져갔는데미국이는, 구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분단 식민통치를 주장했다.. 혁명이 종료하여 제정러시아에서 소련으로 내란을 정리하자 다시 동북아 최강대국이 되었다. 완충국을 buffer state라고 부르며, 완충지대를 buffer zone이라고 부르는데, [[38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일 버퍼존"이다.
 
그런데 1900년 "조선 버퍼존"을 최초로 주장하여 마침내 남북한 분단과 [[38선]]으로 관철시킨 러시아가, 100년만에 견해를 바꾸어, 2011년 11월 최대 국책 연구소 [[IMEMO]]에서 남한 위주의 통일이 러시아 국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특별보고서를 발행했다. 100년만에 러시아의 견해가 바뀌었다. 남한 위주의 통일이, 한국을 중국의 영향권에서 보다 러시아 영향권에 들게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강경파는 중국의 패권 확장을 반대한다. 러시아는 2020년 한국이 통일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타국들과의 차이는, 그냥 예상이 아니라 러시아가 직접 그렇게 만들 것이란 뉘앙스의 말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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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 ==
=== 남북 정부의 수립 ===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 증대를 먼저 고려한 것은 [[냉전]]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잠히도7\\\ 잠당 역시 가은데는좌우검맘작볻 이한가운데한 중도적인 통일정부의 수립이었다. 이북을 김일성이 장악하고 남측에서는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을 천명하자 중도 정치 세력들은 1946년 7월 좌우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한민당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이로 인해 좌우 합작은 결렬되었다.<ref>강만길 외, 통일지향 우리민족 해방운동사, 역사비평사, 2000, {{ISBN|89-7696-248-6}}, 330-332쪽</ref> 한편, 일본 관리들을 모조리 쫓아낸 [[소비에트 연방]]은 6개월 군정을 무사히 마친 후, 1946년 2월 16일에 북쪽에는 이미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설립되었으며 2년간 계속되었다.
 
1947년이 되자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본격화되었고 유엔에서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의결되자 분단을 반대하던 민족주의 정치가들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한국독립당]]의 [[김구]]와 민족자주연맹을 조직한 [[김규식]] 등은 남북의 모든 정치세력이 평양에 모여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열 것을 제안하였다. 김일성은 이 대회를 이북 정권의 정당성 확보의 장으로 이용하려 하였다. 이후 김구는 5·10 단독 선거에 불참하면서 통일 국가의 수립을 역설하였으나 뜻을 실현하지 못한 채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였다.<ref>김기승, 남북협상운동과 통일운동의 개시, 강만길 외, 통일지향 우리민족 해방운동사, 역사비평사, 2000, {{ISBN|89-7696-248-6}}, 330-332쪽</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