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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년 윤정월에 광주판관(廣州判官)이 되었고, 봉상판관(奉常判官)으로 있으면서 의주·삭주도(義州朔州道)의 진제경차관(賑濟敬差官)으로 파견되었으며, 1426년 4월에는 이조정랑으로서 전라도에 파견되어 침입한 왜인의 포획상황을 조사, 보고하였다.
1427년에는 민정을 살피기 위하여 황해도경차관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특히, 세종의 신임이 두터워 우부대언, 좌부대언, 우대언을 거쳐 1433년 좌대언인 그에게 이부지선(吏部之選)을 관장하도록 특명하기도 하였다.
같은해 12월 함길도관찰사가 된 뒤 7, 8년간 북변에서 육진(六鎭)을 개척하여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확정하는 데 큰 공로를 세웠다. 이후 형조판서가 되었고, 예조판서를 거쳐 의금부제조가 되었다. 또한 승문원제조도 겸했다.
1445년에는 충청·전라·경상 3도의 도순찰사로 파견되어 삼남지방의 목마장으로 적합한 곳과 방마(放馬)가 가능한 곳의 수효를 조사하여 보고하였다.
1446년 의정부우찬성으로 임명되고 판예조사(判禮曹事)를 겸하였으며, 이듬해 충청도에 파견되어 태안 등지의 책보(柵堡)를 심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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