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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 ==
{{출처 필요 문단|날짜=2018-08-28}}
;가락국과 그외의 가야소국들은 고대의 [[페니키아]]나 [[고대 아테네|아테네]], 그리고 현대의 [[싱가포르]]와 같은 전형적인 상업도시국가였다.
*가락국과 그 외의 가야소국들은 전형적인 상업도시 국가였다. 가락국을 허브로 동북아연안 바다에서 해상무역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가령 중국에서는 [[신나라]](新--)시대에 아주 잠깐 사용되었던 화천(貨泉)이라는 동전이 한반도에서 일본에까지 다수 출토되기도 하였다. 가락국의 주요산업이 해상무역이었음은 가락국의 초기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탈해세력을 해군으로 쫓아내었다는 기록은 가락국의 해상력의 막강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한 수로왕비인 [[허황옥]]의 세력이 도래할 때 가져온 문물을 한사잡물(漢肆雜物)-한나라의 온갓물건이라 하여 중시 한 점에서 구야국은 건국초기부터 강력한 해상권을 기반으로 해외무역을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주요 무역상품은 철(鐵)이었다. 봉황대에서는 송풍구과 슬래그등의 제철소 유적이 확인되었다. 가락국은 "여뀌잎" 같다는 표현대로 땅이 좁아 농업기반은 취약한 대신에 철이 많이 산출되어 조선전기까지 상당한 철을 국가에 공납했을 정도였다.
 
*가락국의 주요산업이 해상무역이었음은 가락국의 초기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탈해세력을 해군으로 쫓아내었다는 기록은 가락국의 해상력의 막강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한 수로왕비인 [[허황옥]]의 세력이 도래할 때 가져온 문물을 한사잡물(漢肆雜物)-한나라의 온갓물건이라 하여 중시 한 점에서 구야국은 건국초기부터 강력한 해상권을 기반으로 해외무역을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주요 무역상품은 철(鐵)이었다. 봉황대에서는 송풍구과 슬래그등의 제철소 유적이 확인되었다. 가락국은 "여뀌잎" 같다는 표현대로 땅이 좁아 농업기반은 취약한 대신에 철이 많이 산출되어 조선전기까지 상당한 철을 국가에 공납했을 정도였다.
*가락국의 농업기반이라면 [[김해평야]]를 생각하겠지만 당시에 김해평야는 [[고 김해만]]이라는 바다여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대신에 천혜의 무역항구를 가락국에 제공했다. 농업에서 뭔가 경제적인 이득을 기대할 수 없는 가락국으로서는 싫든 좋든 공업을 발전시켜 외국과 교역을 해야만 했고 그 교역의 길이 막힌 순간에 쇠망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주 농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던지 회현동 패총 인근 마을 유적에서 탄화미와 벼가 출토되었다. 1차 산업은 어업이 주가 되었다. 회현리 등, 많은 수의 [[조개무지]](貝塚)가 발견되었다. 조개무지 안에서는 많은 량의 조개껍질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생선뼈가 확인되었고 그 중에서는 심지어 고래, [[참치]], [[상어]]도 발견되었다. 가락국은 농업으로는 수요를 채울 수 없는 식량을 외국과의 교역과 함께 어업에 의존했을 것이다.
*1차 산업은 어업이 주가 되었다. 회현리 등, 많은 수의 [[조개무지]](貝塚)가 발견되었다. 조개무지 안에서는 많은 량의 조개껍질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생선뼈가 확인되었고 그 중에서는 심지어 고래, [[참치]], [[상어]]도 발견되었다. 가락국은 농업으로는 수요를 채울 수 없는 식량을 외국과의 교역과 함께 어업에 의존했을 것이다.
 
== 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