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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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악성 안질환에 걸렸으나 극적으로 실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가 안과진료를 받을 당시 실명할 우려가 있다는 의사의 말에 김활란은 "남의 귀한 아들들을 사지(死地)로 나가라고 했으니, 내가 장님이 되어도 억울할 것 없지. ...(이하 중략)... 당연한 형벌"이라고 말하였다 한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0001594 장상씨가 변호하는 '김활란 친일행각'의 전모] '민족정기 세우는 국회..., 전홍기혜 기자, 프레시안(2002.07.30) 기사 참조</ref> [[1945년]] [[조선언론보국회]] 이사에 피선되었다. {{#tag:ref|상황기피자들은 말한다. 고려대학의 전신인 보성전문을 운영했던 인촌 [[김성수]]가 [[조선]] 학생들에게 [[일본]]의 [[대동아전쟁]]에 협력하라는 글을 쓰고 재학생들에게 가정방문으로 적극적인 동참과 협력을 구하는 등 친일에 앞장서서 황국신민이 될 것을 촉구함으로써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기는 했지만 그를 무조건 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일제침략 하에서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에 일제침략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불가피성을 학생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의도에서 교과서에 서술한 것이라고, 이런 궁색한 변명으로 옹호하며 [[조선임전보국단]]에서 함께 활약한 이화여전의 김활란과 연희전문의 [[백낙준]] 등도 두둔하였다. <br /><br />
이러한 편리한 논리로 [[일본]] 총독부의 탄압이 극심했던 시절 [[조선]] 학생들을 향해 일본과 조선이 하나라며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일본 천황 아래 황국신민이 된 것에 감사하며, 일본 종교인 신도에 참배하는 신사참배할 것을 강요하여 양심을 기망토록 하고,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며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나갈 것을 [[조선]] 청년들에게 독려한, 그래서 일본군의 부족한 병력을 강화시켜 오히려 전쟁을 더 지속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이들이 있었기에 조선의 교육기관이 유지되었고, 이를 통해 [[조선]] 청년들에게 교육을 시킬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보면 맞는 듯하지만 이러한 상황논리는 몰가치적이다. <br /><br />
숭실대학은 [[일본]]의 [[신사참배]]에 응할 수 없다며 자진폐교하였다. 그리고 [[1954년]]에 [[서울]]에서 다시 대학문을 열었다. 만일 그때 모든 학교가 일본에 저항하며 폐교의 길을 함께 걸었다면, 그 응집된 힘이 오히려 일본패망을 앞당겼을 것이고, 민족 전부가 사는 길이 앞당겨져 왔을 것이다. 모두 저항하는 길 대신 일부가 무릎 꿇고 복종하는 길을 선택해, 저항하는 자들을 죽게 만들고, 배신한 자기들만 살아남았다. 이런 상황논리를 계속 주장하며 일본에 협력하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신들만 살아남고서는, 이제 와서는 그때 상황이 그러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상황기피자들은 그래서 몰염치하고 비겁하다는 것이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lec.co.kr/gisaView/detailView.html?menu_code=10&gisaCode=L001002007370011&tblName=tblNews|제목=오시영의 세상의 창-김삼환 시인의 “따뜻한 손”, 참을 수 없는 역사 왜곡자들의 궤변|언어=한국어|이름=오시영 변호사, 시인|날짜=2013-06-07|출판사=법률신문|확인일자=2013-08-30|확인날짜=2013-11-30|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03053141/http://news.lec.co.kr/gisaView/detailView.html?menu_code=10&gisaCode=L001002007370011&tblName=tblNews|보존날짜=2013-12-03|깨진링크=예}}</ref>|group="주"}}<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90216.html 언론사주·대학총장 등 일제말 지도층 치부 ‘낱낱이’] 홍석재 기자, 한겨레(2009.11.27) 기사 참조</ref>
 
=== 광복 이후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