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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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고영철 기자
|날짜=2012-03-05
|확인일자확인날짜=2012-03-07
}}</ref> [[2012년]] [[4월 11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9대 총선|19대 총선]] 결과,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에서 의석 획득에 실패하는 한편, 정당득표에서도 등록 취소 요건 2% 미만인 1.13%를 얻어 등록이 취소되었고, 아울러 2016년까지 진보신당이라는 명칭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ref>[http://news1.kr/articles/631894 진보신당·국민생각·창조한국당 등 18개 정당 등록취소]</ref> 이에 따라 진보신당은 [[녹색당 (대한민국)|녹색당]] 및 [[청년당]]과 함께 [[대한민국 정당법]] 제41조의 ‘등록 취소 정당의 동일당명 사용 금지’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서의 제출 및 동법 제44조의 ‘총선결과 2% 미만 득표 정당의 등록취소’에 대하여 중앙당 등록취소 처분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한편,<ref>{{뉴스 인용 |url=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6024 |제목=녹색당, 진보신당, 청년당 정당등록취소에 헌법소원 제기 |저자=성지훈 |출판사=참세상 |날짜=2012-05-03 |확인날짜=2017-04-21}}</ref><ref name="BR0128">{{뉴스 인용 |url=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82157 |제목=득표율 2% 미만 정당등록 취소 규정은 "위헌" |저자=신소영 |출판사=법률신문 |날짜=2014-01-28 |확인날짜=2017-04-21}}</ref> 2012년 10월 22일 '''진보신당 연대회의'''라는 이름으로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2013년 7월에 '''[[노동당 (대한민국)|노동당]]'''으로 재창당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redian.org/archive/5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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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장여진 기자
|날짜=2013-07-21
|확인일자확인날짜=2013-07-21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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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강경훈 기자
|날짜=2009-08-20
|확인일자확인날짜=2010-07-01
}}</ref> 하여 [[백기완 선거대책본부]] ('백선본')을 꾸렸으나, 백기완 선생이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며 중도사퇴하여 해산되게 된다.
 
105번째 줄:
|저자=양정아
|날짜=2006-10-30
|확인일자확인날짜=2008-03-31
}}</ref> 자주파 계열이 당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당내에서는 선거 과정이 충분히 민주적이지 못했다는 비난도 있었다.
 
126번째 줄:
|저자=문용필
|날짜=2008-04-10
|확인일자확인날짜=2008-04-10
}}</ref> 다만, 의석이 없는 다른 소규모 정당과는 달리 정당 지지율 2%를 넘겼기에 정당등록취소를 면할 수 있었으며, 정부의 정당보조금도 일부분 받을 수 있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2분기 정당보조금 75억 지급
132번째 줄: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2008-05-16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8-06-14
}}</ref>
 
158번째 줄:
|저자 = 정상근 기자
|날짜 = 2009-04-23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9-04-30
}}</ref>
 
167번째 줄:
|저자 = 정상근 기자
|날짜 = 2009-04-23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9-04-30
}}</ref> 이 결과, 4월 25일부터 26일까지 주말 동안 진행된 여론조사를 통해 [[4월 26일]] 저녁 조승수 후보가 단일 후보로 선출되었고,<ref>{{뉴스 인용
|제목 = 환호 속 긴장 "자만이 가장 큰 적"
174번째 줄:
|저자 = 정상근 기자
|날짜 = 2009-04-26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9-04-30
}}</ref> 김창현 후보는 다음날인 [[4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결과에 승복하고 후보를 사퇴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창현, 울산북구 재선거 후보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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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상근 기자
|날짜 = 2009-04-27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9-04-30
}}</ref>
 
189번째 줄:
|출판사 = 연합뉴스
|날짜 = 2009-04-30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9-09-11
}}</ref>
 
202번째 줄:
|저자 = 유명준 기자
|날짜 = 2009-01-20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9-09-11
}}</ref> 참사 이후, 진보신당은 다른 [[야당]]들과 공조하여 검찰수사기록 공개 거부로 용산 참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으려는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진상규명운동을 벌였으며, 원외에서는 유가족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위한 '[[3보 1배]]'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투쟁 ====
220번째 줄:
|저자 = 서울=연합뉴스
|날짜 = 2010-06-03
|확인일자확인날짜 = 2010-06-27
}}</ref>
 
318번째 줄:
|출판사 = 연합뉴스
|날짜 = 2009-09-09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9-09-11
}}</ref>, 경기도당,인천시당을 포함하여 모두 16개 시,도당이 활동하고 있으며, 진보신당 경기도당 부천당원협의회등의 지역당원협의회가 광역시도당 아래에 설치되었다. 경기도당의 경우 [[노회찬]], [[심상정]] 초청강연, 산우회등의 당원 소모임, [[경기도 도의회]]에 초등학생 대상의 [[무상급식]]에 사용할 예산통과를 요구하는 시민 서명운동 및 서명명단의 경기도 교육청 제출등으로 진보신당, 당원, 지역 주민들간의 소통을 맡고 있다. 또한 진보신당 경기도당 부천당원협의회등의 지역조직에서도 [[가톨릭대학교]] 조돈문 교수, [[성공회대학교]] [[정태인]] 교수등의 진보적 [[지식인]]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토론]]하는 당원교양교육 모임,소식지를 발간하여 진보신당을 알리는 일(문화사업)을 하고 있다.
 
332번째 줄:
|저자=정상근 기자
|날짜=2009-01-29
|확인일자확인날짜=2009-04-08
}}</ref> 강령소위는 첫 정기당대회 전인 [[2009년]] 2월에 초안을 공개하고,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2009년]] [[3월 29일]]에 열린 제1회 정기당대회 2차 회의에서 최종수정안을 통과시켰다.
 
356번째 줄:
|저자=정상근
|날짜=2009-03-30
|확인일자확인날짜=2009-04-08
}}</ref><ref>{{뉴스 인용
|url=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3123
363번째 줄:
|저자=사회민주주의 공개정파를 준비하는 모임
|날짜=2009-03-26
|확인일자확인날짜=2009-04-08
}}</ref>
 
375번째 줄:
|출판사 = 프레시안
|날짜 = 2008-03-02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8-09-29
}}</ref>
 
389번째 줄:
|저자 = 최광은(사회당 대표)
|날짜 = 2008-10-14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8-11-01
}}</ref>
 
399번째 줄:
|저자 = 정상근 기자
|날짜 = 2008-10-28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8-11-05
}}</ref>
* '노동자 진보정당 건설 추진위원회'(약칭 '노건추')의 [[양경규]] 공동대표는 현재의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평가에 기반한 강령, 새 정체성, 새로운 토대 구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f>{{뉴스 인용
407번째 줄:
|저자 = 정상근 기자
|날짜 = 2008-11-03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8-11-05
}}</ref>
*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상임이사는 진보신당이 주최한 진보정치 10년 평가토론회 6회차에서 "진보신당의 4가지 가치([[평등]] · [[생태]] · [[평화]] · [[연대 (사회학)|연대]])가 성공하면 역사적 기여를 하는 것인데, (진보신당에게는) 경제성장주의를 넘어서 대중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대중에게 '이게 우리 요구'라고 말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가 아직까지는 없다"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415번째 줄:
|저자 = 변경혜 기자
|날짜 = 2008-10-31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8-11-05
}}</ref>
*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는 《창비주간논평》에 기고한 '민주 · 개혁 · 진보 정치가들을 위한 제언'이란 글에서 <nowiki>'</nowiki>[[민주당 (대한민국, 2008)|민주당]]은 아직도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구상중에 있다고 하며, 다른 두 당(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의 경우는 이상적이기는 하나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감이 떨어지거나 너무 복잡한 내용의 것을 말하고 있다<nowiki>'</nowiki>라고 지적하면서 <nowiki>'</nowiki>(민주당 ·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을 포함한) 우리의 반신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은 시민들이 쉽게 공감하고 기꺼이 지지를 모아줄 수 있을 만한 현실적 대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nowiki>'</nowiki>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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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roken hanging borad of The New Progressive Party (S.Korea).jpg‎|200px|특임자회의 당사 난입으로 깨진 진보신당 현판|thumb]]
 
[[2008년]] [[7월 1일]] 밤 10시 경 [[특수임무수행자회]](이하 '특임자회') 사무총장과 소속 회원 5명이 진보신당 당사를 난입하여 당직자 및 당원들을 폭행하고 당사 현판과 같은 집기를 부수는 등 난동을 피웠다. 이 과정에서 [[칼라TV]] 진행자인 [[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 등 8명이 폭행을 당했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 MB캠프 특위위원장 출신 등 진보신당 당사 난동 2명 영장 |url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96637.html |출판사 = 한겨레 |날짜 = 2008-07-02}}</ref> 진보신당은 이들에게 폭행당한 당원 중 2명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밝혔다.<ref>{{웹 인용 |제목 = 보수단체, 진보신당에 난입하여 당직자 폭행등 난동 |url = http://www.newjinbo.org/board/view.php?id=news&no=193 |출판사 = 진보신당 |날짜 = 2008-07-02}}</ref> 이에 특임자회측은 술을 마시고 진보신당 앞을 지나가던 중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며, 진중권 교수가 [[데일리 노컷 뉴스|노컷 뉴스]]에 특수임무수행자회의 위령제를 “‘북파 공작원의 개그쇼’라고 폄하하는 발언에 분노하고 있었다”라고 해명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특수임무수행자회 “(진보신당 난입은) 우발적 사건” | url =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84385 |출판사 = 데일리 서프라이즈 |날짜 = 2008-07-03}}</ref> 사실 [[특수임무수행자회]]의 진보신당 관계자 및 당원에 대한 폭행은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니며 지난 [[2008년]] [[6월 6일]]에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위령제를 끝내고 가는 특임자회 회원에게 인터뷰를 시도하던 칼라TV 제작진에 폭력을 행사하여 이미 당원 1명의 코뼈가 부러진 바 있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명박과 만난 HID, 서울대생 코뼈 산산조각냈다 |url = 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newsid=20080607002304494&cp=dailyseop |출판사 = 데일리 서프라이즈 |저자 = |쪽 = |날짜 = 2008-06-07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8-07-03 }}</ref> 한편, 이번 당사 난입 폭행사건에 대해 진보신당은 백색 정치 테러로 규정하는 논평을 내고 경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동시에, 특수임무수행자회의 무차별적 폭력에 대해 규탄하였다.
 
이후 특수임무수행자회는 진보신당에게 사과하였지만, 진중권의 칼럼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