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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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정양은 미국에 도착해서 부터 영약삼단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외교활동을 했다.워싱턴에 도착하고 그 다음날 [[1월 10일]] [[미국]] 국무성으로 베이어드 국무장관을 예방하여 한문으로 쓴 국서의 부 본과 영문독본을 제출하고 미국 대통령에게 국서를 봉정하는 날자를 잡았다.이러한 사실을 안 워싱턴 주재 청국공사는 박정양에게 사람을 보내어 영약삼단을 이행 하라고 따졌다. 그러나 박정양은 본국을 떠나 올 때 너무 급하게 서둘다가 정부의 지시를 자세히 받지못하고 왔으며 영약삼단을 따를 수 없다고 영약삼단을 지키지 않았다. 박정양은 계속 [[영약삼단]]을 지키지않고 청국공사와의 불화 등이 문제가 되어 부임한지 11개월만에 귀국하게 되었다.
 
박정양은 미국에서 전권대신으로 활동한 경험을 [[1888년]] 미속습유'(美俗拾遺)에 썼다. 박정양은 미속습유에서 "이 나라는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합해 만든 나라로 권리가 주인인 백성에게 있다. 그러므로 비록 보잘것없는 평민이라 할지라도 나랏일을 자기 일처럼 돌보아 마음과 몸을 다하여 극진히 하지 않음이 없다."라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기억했다.<ref>{{뉴스 인용|url=http://v.media.daum.net/v/20180507115217611?d=y|제목=130년전 조선 외교관 눈에 비친 미국은 어땠을까|날짜=2018-05-07|뉴스=연합뉴스|확인일자확인날짜=2018-05-07}}</ref>
 
=== 김홍집 내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