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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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92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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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ref>{{뉴스 인용
|제목 = 음란 소설 '즐거운 사라' 작가 마광수교수,구속 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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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92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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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그는 법학자 출신의 국무총리 [[현승종]]이 그를 잡아 넣으라는 특별지시하여 영장도 없이 강의실에 체포되었다고 알고 있다고 밝혔다.<ref>강재훈, 이인우,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1170.html “감옥에 갇혀있던 사라 다시 왔다, 또 가둘래?”], 한겨레신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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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92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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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마교수를 구속한데에 대하여 성균관, 유도회(儒道會) 등의 유림 6개 단체<ref>{{뉴스 인용
|제목 = 성균관등 儒林6단체 馬光洙교수구속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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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92년]] 11월 1일
|확인일자확인날짜 =
}}</ref> 와 작가 [[이문열]], 10개의 [[종교]]단체는 마광수 교수를 구속한 검찰의 조치를 환영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10개 종교청소년단체 馬교수구속 환영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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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92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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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반면, 마광수 교수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고은]], [[김병익 (문학평론가)|김병익]], [[유안진]]등을 비롯한 문인 200~300여 명이 문학작품의 [[표현의 자유]] 침해와 출판탄압에 대한 문학·출판인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ref>{{뉴스 인용
|제목 = 文人2百명 비난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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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92년]] 10월 31일
|확인일자확인날짜 =
}}</ref>, 시위를 벌였다. 11월 2일에는 문인들과 [[연세대]]학생 50명이 [[서초동]] 서울지검 앞에서 마교수의 구속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馬교수구속 항의시위 문인,延大生 50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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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92년]] 11월 3일
|확인일자확인날짜 =
}}</ref>. 그러나 [[대한민국 제6공화국|제6공화국]] 정권은 이를 용공으로 몰아 진압해버렸다. 마광수는 항소하였고 이때마다 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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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92년]] 12월 29일
|확인일자확인날짜 =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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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95년]] 6월 16일
|확인일자확인날짜 =
}}</ref><ref>[http://glaw.scourt.go.kr/jbsonw/jsp/jbsonc/jbsonc08.jsp 대법원 1995.6.16. 선고 94도2413 판결 【음란한문서제조,음란한문서판매】]</ref>. [[1995년]] [[8월 8일]] [[연세대학교]]는 마광수 교수를 면직조치하였다. 이후 [[1998년]] 다시 교수직에 복직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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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09년]] [[8월 8일]]
|확인일자확인날짜 =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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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
|날짜 = [[2010년]] [[4월 5일]]
|확인일자확인날짜 =
}}</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