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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선 중종|중종]], [[조선 명종|명종]] 시기 [[양주]] 일대와 [[철원]], [[황해도]] [[봉산군]]과 [[해주부]], [[구월산]] 일대에서 폭넓게 활동하였다. [[정치]]의 혼란과 관리의 부패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불평분자를 규합하여 민가를 약탈하였으나, 아전과 백성들이 도와 잡지 못하였다. [[1559년]]([[조선 명종|명종]] 14년)부터는 [[황해도]] [[구월산]] 등의 산채를 은신처로 정하고 [[황해도]]·[[경기도]] 일대를 중심으로 고을 관아를 습격하고 관리를 살해하는 한편, 관아의 [[창고]]를 털어 양곡과 패물을 훔치는 한편 빈민에게 양곡을 나누어 주었다. [[황해도]] [[장연군|장연]](長淵)·[[옹진군|옹진]](甕津)·[[풍천군|풍천]](豊川) 등지에서 관군이 토벌을 하려 했으나 백성들이 내응하거나 미리 알려주어 이를 피했다.
 
개성의 포도관 이억근(李億根)과 [[남치근]], [[이흠례]] 등 당시 조선의 장수들은 그를 체포하려 했지만 그는 번번히 체포되지 않고 달아났다. 1560년(명종 15년)부터 점차 세력이 위축되던 중 [[1562년]](명종 17년) 음력 1월에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으로 인해 [[구월산]](九月山)으로 철수하여 항전하다가 [[남치근]] 등에게 잡혀서 [[사형]]을 당했다.<ref> 《명종실록》 25권 ~ 28권. </ref>
 
== 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