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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 정부 시기 (1953~1961)====
{{참조|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1959년 1월 미국의 든든한 동맹이던 풀헨시오 바티스타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쿠바 혁명]]) 들어선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정부를 미국은 처음부터 가만두려 하지 않았고,<ref>{{웹 인용 |url=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4813.html |제목= 쿠바로 가는 길 열렸다 |저자= 정인환 기자 |웹사이트=한겨레21 |출판사=한겨레신문사 |날짜= 2009-04-24 | 확인일자확인날짜=2009-06-13 |인용문=<!--1959년 1월 든든한 동맹이던 풀헨시오 바티스타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들어선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쿠바’를 미국은 처음부터 가만두려 하지 않았다.--> }}</ref> 쿠바는 1961년 1월 자유 진영의 중심국인 [[미국]]과 국교를 단절했다.
====케네디 정부 시기(1961~1963)====
{{참조|존 F. 케네디}}
1961년 [[미국의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는 CIA의 도움을 받는 쿠바 망명자들이 [[피그스 만 침공]](1961년 4월)을 감행하도록 지원하였으나 군인들이 모두 생포 및 사살되어 미국의 침공은 실패했다. 오히려 이 사건으로 미국은 쿠바에서의 주권침해행위에 대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피그스 만 침공]]은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를 가져오게 된다. 잇따른 미국의 노골적인 겁박에 몰린 신생 혁명국 쿠바는 [[소련]]에 기대어 활로를 찾으려 했다. [[소련]]의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함으로써 미국의 전면 침공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대립은 이내 임계점으로 치달았다. 핵전쟁의 공포가 지구촌을 휘감았다. 위기를 피하려는 미-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ref>{{웹 인용 |url=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4813.html |제목= 쿠바로 가는 길 열렸다 |저자= 정인환 기자 |웹사이트=한겨레21 |출판사=한겨레신문사 |날짜= 2009-04-24 | 확인일자확인날짜=2009-06-13|인용문=<!-- 미국은 쿠바 출신 망명객을 중심으로 숱하게 무장세력을 규합해 ‘직접 개입’에 나섰다. 하지만 번번이 ‘미수’에 그쳤다. 그 대표적 사례가 1961년 4월 벌어진 ‘피그만 침공사건’이다. 미 중앙정보국(CIA) 주도로 쿠바 망명자 1500여 명을 동원해 쿠바 침공에 나선 미국은 불과 사흘 만에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1천여 명이 생포되는 참담한 패배를 맛봤다. ...잇따른 미국의 노골적인 겁박에 몰린 ‘신생 혁명국’ 쿠바는 옛 소련에 기대 활로를 찾으려 했다. 옛 소련의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함으로써 미국의 전면 침공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때는 1962년 10월, 냉전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다. 대립은 이내 임계점으로 치달았다. 핵전쟁의 공포가 지구촌을 휘감았다. 위기를 피하려는 미-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봉합되긴 했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이후 반세기 가까이 이어질 미국의 대쿠바 정책의 방향을 확정짓는 사건이었다.--> }}</ref> 미국이 이후에는 이 섬에 침공하지 않겠다는 구두 약속을 하는 등 봉합되긴 했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이후 반세기 가까이 이어질 미국의 대쿠바 정책의 방향을 확정짓는 사건이었다. 미국은 쿠바에 대해 외교적, 경제적으로 완전한 봉쇄 정책을 단행하였고, "몽구스 작전"(Operation Mongoose)을 개시하였다. 쿠바 혁명 이후, 1961년까지 수십만명이 미국으로 피신하였고,<ref>{{서적 인용 |제목=Cuba |저자=Ted Henken}}</ref> 1959년부터 1993년까지 약 120만명의 쿠바인(현재 인구의 10%)이 미국을 향해 쿠바를 떠났다.<ref>{{웹 인용 |url=http://www.census.gov/Press-Release/www/releases/archives/facts_for_features_special_editions/000797.html |제목=US Census Press Releases<!-- 봇이 붙인 제목 --> |확인날짜=2013년 07월 19일 |보존url=http://arquivo.pt/wayback/20090709154810/http://www.census.gov/Press-Release/www/releases/archives/facts_for_features_special_editions/000797.html |보존날짜=2009년 07월 09일 |깨진링크=예 }}</ref> 주로 이들은 작은 보트나 허술한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왔다.
 
===격동의 시대 (1964-1980)===
 
===현대 (1980-현재)===
1992년엔 "쿠바민주화법" 통과로 봉쇄정책의 입법화가 이뤄졌다. 미국은 "쿠바가 민주화 이행을 거부하고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한" 쿠바에 대한 통상 제재를 지속하고 있었다.<ref>{{웹 인용|url=http://www.state.gov/www/regions/wha/cuba/democ_act_1992.html|제목=Cuban Democracy Act of 1992|출판사=State Department |인용문=<!--SEC. 1703. STATEMENT OF POLICY. ... It should be the policy of the United States -- ...6. to maintain sanctions on the Castro regime so long as it continues to refuse to move toward democratization and greater respect for human rights;--> |보존url=https://archive.is/KlHx|보존날짜=2012-08-05}}</ref> 베트남 정부가 폐쇄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문제점을 깨닫고 개혁개방정책을 편 이후 미국 기업인과 언론이 베트남과 관계를 개선하라는 압력을 넣자 1994년 2월, 클린턴 행정부는 마침내 1975년 이후 계속되어 왔던 베트남에 대한 무역금지조치를 해제했다. 1995년 1월 양국간에 상호연락사무소가 개설된 데 이어 동 7월 11일에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다. 1996년엔 극우 성향의 제시 헬름스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공화당) 주도로 "쿠바 자유화 및 민주화연대법"([[헬름스-버턴법]])이 통과돼 미국 자본의 쿠바 투자가 사실상 봉쇄됐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엔 쿠바 출신 이민·망명자들의 "본국 송금"조차 사실상 차단되기에 이르렀다.<ref>{{웹 인용 |url=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4813.html |제목= 쿠바로 가는 길 열렸다 |저자= 정인환 기자 |웹사이트=한겨레21 |출판사=한겨레신문사 |날짜= 2009-04-24 | 확인일자확인날짜=2009-06-13|인용문=<!-- 해를 거듭할수록 봉쇄의 고삐는 옥죄어졌다. 급기야 지난 1992년엔 ‘쿠바민주화법’ 통과로 봉쇄정책의 입법화가 이뤄졌다. 1996년엔 극우 성향의 제시 헬름스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공화당) 주도로 ‘쿠바 자유화 및 민주화연대법’(헬름스-버튼법)이 통과돼 미국 자본의 쿠바 투자가 사실상 봉쇄됐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엔 쿠바 출신 이민·망명자들의 ‘본국 송금’조차 사실상 차단되기에 이르렀다.--> }}</ref>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오바마]]는 2009년 4월 17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미국은 쿠바와 새로운 시작을 추구한다."고 표명하였고 47년 만에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을 일부 해제했다.<ref>{{웹 인용|url=http://www.america.gov/st/peacesec-english/2009/April/20090421102201dmslahrellek0.4116632.html?CP.rss=true|제목=Obama Says U.S., Cuba Taking Critical Steps Toward a New Day|출판사=america.gov|인용문=<!--Although Cuba was not on the summit agenda, nor were Cuban representatives invited to attend the gathering of 34 democratically elected hemispheric leaders in Port of Spain, the capital of Trinidad and Tobago, the country was nevertheless on everyone’s mind. Obama acknowledged as much in opening remarks April 17. “There’s been several remarks directed at the issu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uba, so let me address this. The United States seeks a new beginning with Cuba,” he said.-->|확인날짜=2009년 09월 06일|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1130044737/http://www.america.gov/st/peacesec-english/2009/April/20090421102201dmslahrellek0.4116632.html?CP.rss=true|보존날짜=2009년 11월 30일|깨진링크=예}}</ref>
 
== 각국과의 대외 관계 ==
 
===={{국기|사우디아라비아}} ====
9·11 테러 이래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2006년 기준으로 캐나다와 멕시코의 뒤를 이은 세 번째 원유 공급원)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미국은 전 세계에 걸쳐 원유 탐사작업과 석유산업의 투자를 늘렸다. 미국에서는 전제주의 및 신정정치 속성의 사우디아라비아 체제를 용인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역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계와 국민 가운데 상당수는 점점 더 자국에 진출하는 미국을 배척하고 미국이 행사하는 영향력을 거부했다.<ref>{{웹 인용 |url=http://weekly.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06/2009010601028.html |제목= <nowiki>[지도로 읽는 세상] 08 새로운 탐욕의 희생양, 아프리카 </nowiki> |웹사이트=주간조선 |출판사=[[조선일보사]] |날짜= 2009-01-12 |확인일자확인날짜=2010-04-28 |인용문=<!--9·11 테러 이래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2006년 기준으로 캐나다와 멕시코의 뒤를 이은 세 번째 공급원)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더더욱 그러한 활동을 증대시켰다. 워싱턴에서는 전제주의 및 신정정치 속성의 사우디아라비아 체제를 용인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역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계와 국민 가운데 상당수는 점점 더 자국에 진출하는 미국을 배척하고 미국이 행사하는 영향력을 거부했다.--> }}</ref>
 
===={{국기|일본}}====
 
=== 아프리카 ===
미국의 관점에서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기니만이 제시하는 중대한 이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의 동부 해안과 훨씬 더 가깝다. 둘째, 석유층이 풍부하다(상투메, 나이지리아). 셋째, 아프리카 여러 지역의 접점이자 차드의 석유를 카메룬으로 수송하는 송유관의 종착지다. 그래서 2006년 12월, 미국은 자국의 석유회사들이 진출해 있는 기니만에 해양 감시용 레이더 장비를 배치했다. 2007년 봄, 미국은 또 미 해군과 상투메프린시페의 해안 경비대 간에 합동 군사훈련을 마련했다. 이러한 조치를 보완하기 위해 이제 상투메프린시페 열도 내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석유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심사숙고하는 ‘아프리카 석유정책 주도그룹(The Africain Oil Policy Initiative Group)’이 그 방안을 제안했다. 결론적으로 이 단체는 아프리카의 석유를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한 우선순위 대열에 끌어올리고, 기니만을 ‘사활이 걸린 이익지대’로 선포하며 그 지역에 미국 군대의 사령부를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ref>{{웹 인용 |url=http://weekly.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06/2009010601028.html |제목= <nowiki>[지도로 읽는 세상] 08 새로운 탐욕의 희생양, 아프리카 </nowiki> |웹사이트=주간조선 |출판사=[[조선일보사]] |날짜= 2009-01-12 |확인일자확인날짜=2010-04-28 |인용문=<!--미국의 관점에서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기니만이 제시하는 중대한 이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의 동부 해안과 훨씬 더 가깝다. 둘째, 석유층이 풍부하다(상투메, 나이지리아). 셋째, 아프리카 여러 지역의 접점이자 차드의 석유를 카메룬으로 수송하는 송유관의 종착지다. 그래서 2006년 12월, 미국은 자국의 석유회사들이 진출해 있는 기니만에 해양 감시용 레이더 장비를 배치했다. 2007년 봄, 미국은 또 미 해군과 상투메프린시페의 해안 경비대 간에 합동 군사훈련을 마련했다. 이러한 조치를 보완하기 위해 이제 상투메프린시페 열도 내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석유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심사숙고하는 ‘아프리카 석유정책 주도그룹(The Africain Oil Policy Initiative Group)’이 그 방안을 제안했다. 결론적으로 이 단체는 아프리카의 석유를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한 우선순위 대열에 끌어올리고, 기니만을 ‘사활이 걸린 이익지대’로 선포하며 그 지역에 미국 군대의 사령부를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ref>
 
==== {{국기|리비아}} ====
=== 북아메리카 ===
==== {{국기|과테말라}} ====
주(駐)과테말라 미국 대사관은 [[과테말라 시티]]에 있다. 미국과 과테말라는 전통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인권, 시민 운동, 군사 문제 등에서 때로 갈등을 빚어왔다.<ref>{{웹 인용 |url=http://www.state.gov/r/pa/ei/bgn/2045.htm |제목=Background Note: Guatemala |출판사=US State Department |확인일자확인날짜=2009-07-06 |인용문=Rel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Guatemala traditionally have been close, although at times strained by human rights and civil/military issues. }}</ref>
 
===={{국기|멕시코}}====
 
==== {{국기|온두라스}}====
2009년 6월에 일어난 [[온두라스]]의 쿠데타 직후 이를 강력히 비난했던 미국의 태도가 서서히 바뀌어갔다.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며 제재를 거론하더니, 2009년 10월 말 국무부 대표단이 온두라스를 방문한 이후 태도가 급변했다. “온두라스 국민은 스스로 대표자를 뽑을 권리가 있다. 셀라야 대통령이 복귀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을 치르더라도, 그 결과를 인정하겠다.” 미 국무부는 그렇게 발표했다. “셀라야 대통령의 복귀 여부는 의회에서 판단하도록 하자”고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url=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6272.html |출판사=한겨레신문사 |뉴스=한겨레21|저자=정인환|날짜=2009-12-10|확인일자확인날짜=2010-02-13|인용문=<!-- 쿠데타 직후 이를 강력히 비난했던 미국의 태도는 서서히 바뀌어갔다.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며 제재를 거론하더니, 지난 10월 말 국무부 대표단이 온두라스를 방문한 이후 태도가 급변했다. “온두라스 국민은 스스로 대표자를 뽑을 권리가 있다. 셀라야 대통령이 복귀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을 치르더라도, 그 결과를 인정하겠다.” 미 국무부는 그렇게 발표했다. “셀라야 대통령의 복귀 여부는 의회에서 판단하도록 하자”고도 했다.--> }}</ref>
 
===={{국기|쿠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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