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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李明博<ref>{{헌정회|139}}</ref>, [[1941년]] [[12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이다.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이다. 호는 원래 '''일송'''(一松)이나 서울특별시장 시절이던 [[2005년]] [[10월 26일]]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고대 동문 [[김정배 (역사학자)|김정배]] 위원장의 권유에 따라 '''청계'''(淸溪)로 바꿨다.<ref>{{뉴스 인용|제목=이명박 시장의 새 아호 '청계(淸溪)'|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0060698|출판사=노컷뉴스|날짜=2005-10-27|작성자저자=이재기}}</ref> 1970년 12월 19일 [[김윤옥]]과 결혼하여 1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시형, 딸은 주연, 승연, 수연이다.
 
일제 강점기 때 [[오사카]]에서 목장 노동자였던 아버지 이충우(李忠雨)와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 채태원 사이에 4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해방 직후 귀국해 [[포항시|포항]]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로 이사하여 막노동을 비롯해 온갖 잡일을 하던 중 청계천 헌책방 주인에게 얻은 책으로 대입 준비에 들어갔고, 어머니가 좌판 일을 하던 이태원 시장의 상인들 도움으로 등록금을 마련해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했다.<ref>[http://www.busanilbo.com/news2000/html/2007/1220/010020071220.1006092851.html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샐러리맨 신화'이어 '대권 도전'도 성공 - 부산일보]</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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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초반 ===
==== 출생과 어린 시절 ====
이명박은 [[1941년]] [[12월 19일]]에 [[일본 제국|일본]] [[오사카]]의 [[조선인]] 부락에서<ref>{{뉴스 인용|제목=〈스페셜 리포트〉 이명박 후보, 오사카 출생지를 확인하다|url=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972626|출판사=일간스포츠|날짜=2007-12-07|작성자저자=정병철}}</ref> 이충우(李忠雨)와 채태원 사이의 4남 3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 이씨]](慶州李氏) 국당공파(菊堂公派)이다.<ref>후 종윤(從允)송와공(松窩公)후 군영(君塋)후 준(濬)삼효(三斅 흥해)후이다.</ref> 이충우는 포항시 흥해읍 덕성리가 고향인 목부(牧夫)로, 반야월 출신의 채태원을 만난 뒤 일거리를 찾아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31480 <한 대선후보 이명박은 누구인가> 2007.08.20. - 연합뉴스]</ref> 이충우 부부가 살던 조선인 부락은 목축장이 유명했던 곳으로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핍박이 극심한 곳이었다.<ref>[http://news.joins.com/article/2972626 [스페셜리포트] 이명박 후보, 오사카 출생지를 확인하다. 2007.12.07. - 중앙일보]</ref> 아버지 이충우(李忠雨)의 본명은 '''이덕쇠'''였으나 1939년에 이충우로 개명하였다. 이명박도 이상정(李相定)이었는데 이명박(李明博)으로 바꿨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명박 "군대 가고 싶었지만 병 때문에 훈련소서 퇴출당해" |url =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7200147 |출판사 = [[동아일보]] |저자 = |쪽 = |날짜 = 2007-07-20 |확인날짜 = }}</ref> 다른 형제들의 이름은 모두 상(相)자 돌림이지만 혼자만 ‘명박’인 이유는 어머니가 보름달이 치마폭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는 ‘밝을 명(明), 넓을 박(博)’자를 넣어 지었기 때문이다. 족보에는 돌림자를 딴 ‘상정’(相定)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1220005001 이명박 시대 - 그는 누구인가 2007.12.20. - 서울신문]</ref> 제17대 대선 때 돌림자가 다른 이름 때문에 ‘형제들과 배가 다르다’는 공격을 받아 DNA 검사까지 받기도 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12192305271&code=910112 이명박, 가난, 시련 떨친 ‘성공신화’ ceo형 리더십, 2007.12.19 - 경향신문]</ref> 창씨 개명의 이름은 '''쓰키야마 아키히로'''<ref>[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37519 '우리가 남이가', 안보는 무슨 개뿔? 신 정경유착 표본, 쓰키야마(月山) vs 시게미쓰(重光)]</ref>(月山明博)로서 조부 이종한(李鐘漢)이 [[1940년]]에 쓰키야마 씨(月山氏)로 창씨하였다고 한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경상북도]] [[영일군]] [[흥해읍]] 덕성리 덕실마을에 정착했고<ref>{{뉴스 인용 |제목 = 겨울바다 바다, 그 너머에 삶의 열기가 있다 |url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877&yy=2008#axzz3EasZvcY3 |출판사 = [[매일신문]] |저자 = |쪽 = |날짜 = 2008-01-24 |확인날짜 = }}</ref> 약 2년 정도 거주 후 포항읍내로 이사했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국땅을 밟은 아버지는 귀국 후에도 목장 일에 종사했고 어머니 역시 과일행상에 나섰지만 그의 가족의 생활고는 해결되지 않았다. 포항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한국 전쟁]]이 터졌고 미군의 폭격으로 바로 위의 누나와 귀국후 태어난 막내 남동생을 잃었다.<ref name="childhood">{{웹 인용 |url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7121918224230366|제목 = [이명박시대]李 당선자 그의 일대기는?|저자 = 서영백|날짜 = 2007년 12월 19일|확인날짜 = 2013년 2월 12일}}</ref><ref name="ABCD1">{{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214&aid=0000056386|제목=이명박은 누구인가|날짜=2007-12-19|출판사=MBC|확인날짜=2010-4-11}}</ref> 전쟁통에 집안 살림은 더 어려웠고 단칸방에서 모든 식구가 자며 하루 두 끼는 술지게미로 때웠다.<ref name="childhood"/> 그 때문에 친구들에게 술 냄새를 풍긴다며 구박받기도 했다. 어렸지만 성냥, 김밥, 밀가루떡을 팔아 살림을 도왔다.<ref>{{서적 인용 | 제목 = 불멸의 리더십 이명박 | url = 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701/h2007011916152721000.htm | 출판사 = 바이오프레스 | 저자 = 김대우 | 날짜 = 2005-03-21 | 확인날짜 = 2012-03-08 |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20319201053/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701/h2007011916152721000.htm | 보존날짜 = 2012-03-19 | 깨진링크 = 예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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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bastián Piñera - Lee Myung-bak.jpg|200px|섬네일|오른쪽|[[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의 대통령|칠레 대통령]]과 함께 한 이명박(2010년)]]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10월 29일부터 30일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회의에 참석해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위한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 대통령은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선진 7개국(G7) 이외 국가중 최초<ref name="mbn.mk.co.kr">{{뉴스 인용|제목 = 2010 10대 뉴스 성공적 G20 개최…이젠 내년이다
|url=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3&news_seq_no=1022471|출판사 = [[매일경제]]|작성자저자 = 황승택 기자|날짜 = 2010-12-24}}</ref> 로 열리는 G20 서울회의에서 G20 비회원국인 아세안 국가들의 입장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약속하고 아세안 의장국인 베트남을 공식 초청했다. 이에 대해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은 "아시아에서 한국이 G20 의장국을 맡아 기쁘다"며 축하했다고 청와대 측은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 = 냉랭했던 중-일, MB 손 이끌려 한 테이블에 앉았다|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4270552&cp=nv|출판사 = [[국민일보]]|작성자저자 = 남도영 기자|날짜 = 2010-10-30}}</ref> G20 서울회의는 미국과 중국의 양보 없는 다툼 속에 일촉즉발로 치닫던 '환율 전쟁'을 "각국이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한다"라는 구속력 있는 합의를 이끌어 내어 성공적으로 중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0년 국내 10대 뉴스로 선정되었다.<ref name="mbn.mk.co.kr"/> 외신들 또한 한국이 서울 G20 정상회의로 명실상부한 세계경제 주도국가로 자리매김하였다고 평가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호주 언론, 서울G20 성과 높은 평가|url=http://korea.kr/newsWeb/pages/brief/categoryNews2/view.do?newsDataId=148704903&category_id=gigo_news&section_id=gigo_sec_01&call_from=extlink|출판사 = [[공감]]|작성자저자 = 김영수 주시드니 한국문화원장|날짜 = 2011-1-12}}</ref> 한편, 국가브랜드위원회는 G20 서울회의로 1조 8천원의 홍보효과가 발생하였다고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국가브랜드委 "서울 G20정상회의로 1.8조 홍보효과"|url=http://www.ajnews.co.kr/view.jsp?newsId=20110109000055|출판사 = [[아주경제]]|작성자저자 = 장용석 기자|날짜 = 2011-1-9}}</ref>
 
아세안은 동남아시아의 지역협력기구로서 2010년 10월 기준으로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10개국이 가입해 있으며, 중국과 EU에 이어 한국의 3대 시장이기도 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아세안 10개 나라 정상들과 양측 관계를 '포괄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함으로써 경제협력 뿐만 아니라 안보문제 등에서 양측간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통해 한-아세안센터 지원 예산 증액, 아세안 지역 장학생 확대 등도 약속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한-메콩강 외교장관회의' 신설을 제안했고, 아세안 정상들은 환영 의사를 밝혔는데, 메콩강 경제권은 천안자원의 보고로 주목받으며 세계 각국이 진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지역이다. 아세안 역내 메콩강 유역 국가는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태국 등이 있으며, 이로써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신아시아 외교의 핵심 대상인 아세안과의 관계를 실질적으로 강화하게 됐다. 즉 아세안을 포함한 동아시아 신흥국의 리더 역할을 통해 지역내 중심국가로 올라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신아시아 외교' 구상을 가속화하게 된 것이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한중일 정상, 6자 회담 위한 회담은 않겠다|url = http://news.donga.com/3/all/20101030/32229308/1|출판사 = [[동아일보]]|작성자저자 = 정용관 기자|날짜 = 2010-10-3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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