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교육: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국자감: 휘한을 위한으로 오타수정 |
|||
13번째 줄:
=== 국자감 ===
{{본문|국자감}}
[[국자감 (고려)|국자감]]은 [[고려]]의 대표적인 관학이자 당시 최고학부였다. 국자감의 설립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여겨진다. 먼저, [[유교]] 군주의 지상과제인 [[교화]]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교화란 국민들을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으로서, 유교사회에서 학교는 교화의 근원으로 여겨짐에 따라 유교 국가에서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것은 당위였다. 다음으로는 학교가 [[과거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당시 왕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과거 제도는 유능한 인재선발을
[[국자감 (고려)|국자감]]의 특징으로서는 먼저 묘학제(廟學制)가 있다. 국자감에는 [[공자]]를 위시한 [[유교]] 성현들을 제사 지내기 위한 장소인 문묘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한 학당이 별도로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문묘가 독립되어 있지 않고 학당 안에 부설되어 있었던 [[통일신라]]의 [[국학]] 과는 다른 점이었다. 이런 문묘 종사와 학술기관의 융합 기능은 [[조선]]의 [[성균관]]으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