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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 ==
=== 남북 정부의 수립 ===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 증대를 먼저 고려한 것은 [[냉전]]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가운데한 중도적인 통일정부의 수립이었다. 이북을 김일성이 장악하고 남측에서는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을 천명하자 중도 정치 세력들은 1946년 7월 좌우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한민당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이로 인해 좌우 합작은 결렬되었다.<ref>강만길 외, 통일지향 우리민족 해방운동사, 역사비평사, 2000, {{ISBN|89-7696-248-6}}, 330-332쪽</ref> 한편, 일본 관리들을 모조리 쫓아낸 [[소비에트 연방]]은 6개월 군정을 무사히 마친 후, 1946년 2월 16일에 북쪽에는 이미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설립되었으며 2년간 계속되었다.캬캬캬캬캬캬캬캬
 
1947년이 되자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본격화되었고 유엔에서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의결되자 분단을 반대하던 민족주의 정치가들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한국독립당]]의 [[김구]]와 민족자주연맹을 조직한 [[김규식]] 등은 남북의 모든 정치세력이 평양에 모여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열 것을 제안하였다. 김일성은 이 대회를 이북 정권의 정당성 확보의 장으로 이용하려 하였다. 이후 김구는 5·10 단독 선거에 불참하면서 통일 국가의 수립을 역설하였으나 뜻을 실현하지 못한 채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였다.<ref>김기승, 남북협상운동과 통일운동의 개시, 강만길 외, 통일지향 우리민족 해방운동사, 역사비평사, 2000, {{ISBN|89-7696-248-6}}, 330-332쪽</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