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네세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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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중반 파르네세 가문의 권력은 상당히 강해졌는데, 특히 [[라누치오 파르네세|연장자 라누치오]] 덕분에 그들의 소유지는 [[볼세나 호수]]와 [[몬탈토디카스트로]]의 남쪽 지방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피티글리아노]]의 오르시니를 적대한 이웃의 시에나를 위한 총사령관이 되었으며, 승리를 거두고 나서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라는 직함을 얻었다.
[[파일:Tizian 068.jpg|thumb|right|220px|[[교황 바오로 3세]]와 그의 손주들인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알레산드로 파르네세]](왼쪽)와 [[오타비오 파르네세]].]]
[[파일:Parma, 02palazzo della pilotta 01.jpg|right|thumb|220px|파르마에 있는 파르네세 소유의 필로타 궁전.]]
라누치오의 아들 피에르 루이지는 역사가 깊은 호족 가에타니 가문([[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배출함)의 일족과 결혼하였다. 그리하여 로마는 파르네세에게 한층 더 중요한 지위를 부여하였다. 그의 딸 [[줄리아 파르네세|줄리아]]가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정부(情婦)가 된 덕분에 로마에서 파르네세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은 한층 더 넓어졌다. 그녀는 교황으로 하여금 자신의 형제 알레산드로에게 [[추기경]]의 지위를 주게 하였다; 알렉산데르의 후임자인 [[교황 율리오 2세|율리오 2세]] 통치 아래에서 알레산드로는 [[1534년]] [[마르카안코네타나]]의 지배자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교황 바오로 3세]]로 등극하였다. 그의 업적들 가운데서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전례가 없는 친족 등용과 [[트리엔트 공의회]]의 개최를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