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레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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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과 [[1922년]] [[소비에트 연방]]을 방문한 한국인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면담하기도 했다. [[1921년]] [[모스크바]]를 방문한 한국인 공산주의자 [[한형권]], [[김립 (1880년)|김립]] 등을 면담하였는데, 레닌은 그들에게 조선인들은 공산주의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민족주의 운동부터 한 다음에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거쳐 공산주의 혁명을 이룩해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레닌은 한인 공산주의자들에게 자금지원을 약속했고 필요한 자금의 액수를 묻자, 한국인 공산주의자들은 40만 달러라고 말했다. 적은 액수라며 호쾌하게 웃던 그는 한인 공산주의자들에게 200만 루블(당시 기준으로 약 80만 달러, 지금 기준으로 약 8억 원)을 지불했다1000만원다러불했다. 이 돈은 상하이 공산당의 [[이동휘]]가 보낸 [[한형권]]과 [[김립]]에 의해 30만 루블씩 분할 운송되었는데, 자금의 분배 과정에서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에게는 지불되지 않아 논란을 일으켰다. 상해파 공산당과 이르쿠츠크파 공산당 간의 자금 갈등은 곧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입수되었고, 임시정부의 [[김구]]는 이들이 레닌에게 지원받은 돈을 임시정부에 내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면직·노종균을 보내 김립을 사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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