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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헌(愼思獻, 1520년 ~ ?)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字)는 성백(誠伯), 본관은 거창(居昌)이다. [[단경왕후]] 신씨의 친정 조카이자, [[연산군]]의 왕비 폐비 신씨의 친정 종손자가 도니다. [[신승선]]과 [[신수근]]의 후손이고, 외가로는 [[임사홍]]의 의증손자가 된다.
 
과거 시험 문제를 시험 감독관인 [[정사룡]]에게 뇌물을 주고 답을 미리 알아냈다가, 시험의 장원급제자의 문제가 공론에 오르면서 그가 뇌물을 주고 답안을 미리 알아낸 것도 밝혀져 문제가 되기도 했다. 곧 파방되었지만 당대의 권신 [[이량]]의 심복이 되면서 이듬해 다시 과거 복과조치 되었다. 이후 사예, 사간, 봉상시부정 등을 지내며 이량의 심복으로 활동하다가 [[1563년]](명종 18) [[이량]]이 사림을 제거하려다가 실패하면서, 그해 [[8월]] [[심의겸]], [[기대항]] 등의 공격을 받고 [[이량]], [[윤백원]](尹百源), [[이감 (조선)|이감]], [[고맹영]] 등과 함께 6간으로 몰렸다몰려 몰락하였다.
 
== 생애 ==
본관은 거창(居昌)으로 자는 성백(誠伯)이다. 1520년(중종 15)에 태어났으며 의정부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좌의정 신수근(愼守勤)이며 [[연산군]]의 부인 [[거창군부인 신씨]]는 그의 대고모가 되며, [[조선 중종중종]]의 첫 부인으로 [[중종반정]] 때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는 그의 고모가 된다. 아버지는 사헌부장령을 지낸 신홍조(愼弘祚)이고, 어머니는 풍천임씨로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지냈으나 [[갑자사화]],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죽은 [[임희재 (1472년)|임희재]](任熙載)의 딸이다. [[임사홍]]은 그의 외증조부였다.
 
[[중종 반정]]으로 그의 조부 [[신수근]], [[신수영]] 등이 모두 살해당하고, 그의 집안은 몰락했지만 그는 연좌되지 않았다. 그의 외가 역시 외증조부 [[임사홍]]이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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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558년 9월부터 대간과 사헌부 등의 논계와 규탄으로 공론(公論)이 조성되면서 [[정사룡]]은 한때 파직되고, 신사헌은 과거급제가 말소되었다. [[조선 명종|명종]]이 [[윤원형]]을 견제할 요량으로 [[인순왕후]]의 친정 외삼촌이자 부계로는 10촌인 [[이량]](李樑)을 찾아가 그의 심복이 되면서 [[1558년]] [[12월]] 왕이 승정원에 그가 억울하게 삭방되었다고 전교를 내렸다. [[1559년]] [[3월]] [[이량]] 등의 힘으로 그는 과거 급제에 과거 급제자에 복과(復科)되었다. [[사헌부]]가 그의 복과를 취소할 것을 여러번 요청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어 그해 [[3월 29일]] 아들 신희(愼喜)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조선 명종|명종]]에게 상소로 호소했고, 이 상소가 받아들여지면서 그의 복과가 확정되었다.
 
그 뒤 그는 이량의 심복으로 활약하면서 [[성균관]]사예(司藝), [[사간원]]사간 등을 거쳐 [[1563년]](명종 18) 봉상시부정이 되었으나, 그해 이량이 [[사림파]]를 제거하려다가 이를 알게 된 [[심의겸]]의 사주로, [[기대항]]의 탄핵으로 이량이 몰락할 때 그 또한 [[기대항]]의 탄핵, 공격을 받게 되었다. 곧 여론이 조성되어 이량이 실세하자 1563년 8월 이량, [[고맹영]], [[이감]], [[윤백원(尹百源)]], 김백균 등과 함께 6간(六奸)으로 지목되어몰려 좌천, 해직될 때 그도 해직되고, 이 해 [[10월]] [[거제도]]로 유배되었다. 한편 그의 외손자는 [[광해군]] 때의 [[북인]]과 [[소북]]의 지도자였던 [[남이공]] 등이다.
 
== 기타 ==
[[조선 성종|성종]]과
 
== 관련 항목 ==
* [[이량]]
* [[정사룡]]
* [[신수근]]
* [[신승선]]
* [[중모현주]]
* [[임사홍]]
* [[임희재]]
* [[임숭재]]
 
[[분류:1520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