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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증조할머니 [[중모현주]] 쪽으로는 [[세종대왕]]의 외5대손이 된다. 그러나 [[1506년]]의 [[중종 반정]]으로 그의 조부 [[신수근]], [[신수영]] 등이 반정 참여를 거부하다가 모두 살해당하고, 그의 집안은 몰락했지만 그는 [[연좌]]되지 않았다. 그의 외가 역시 외증조부 [[임사홍]]이 [[중종 반정]] 당시 처형당했다.
 
부인은 풍양조씨로, 생원당대의 저명한 시인이자 [[명나라]]까지 시로서의 명성을 알린 조인규(趙仁奎)의 딸이다. 장인 조인규는 승지, [[참의]], [[한성부]]좌윤, 우윤 등을 역임한 관료이기도 했다.
 
[[음서 제도|음서]]로 관직에 올라 찰방(察訪)을 역임했으나 얼마 뒤 사퇴하였다. [[1546년]](명종 1) 식년사마시(式年司馬試) 진사에 3등으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558년(명종 13) [[과거 제도|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때 신사헌은 과거 시험 시관(試官) 중의 한 사람인 [[정사룡]](鄭士龍)에게 뇌물을 바쳐 시제의 답을 미리 알고서 시험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동시에 이때 별시 문과의 장원급제자 오운기(吳雲驥)의 전시 시험 답안지 내용이 문제가 되어, 대간이 파방(罷榜)을 주장하여 물의가 분분하였는데, 오운기의 답안지를 조사 과정에서 이때 그가 시험 직전, 시험관인 [[정사룡]]에 뇌물을 바치고 미리 과거 시험의 답안지를 알아낸 것 역시 밝혀지면서 문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