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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조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임금이 ‘[[고금 동충]](古今同忠)’이라는 4자를 써서 내려 주고 이르기를, "신수근(愼守勤) 은 [[포은]](圃隱)과 함께 충의(忠義)가 같다."하고, 호조에 명하여 사우(祠宇)를 만들어 주고 그 곁에 각(閣)을 세워서 이것을 새기어 걸게 하라고 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영조실록]] 영조 51년 8월 24일 기해 2번째기사.</ref>
 
그와 그의 동생은 처형되었지만 아들 [[신홍조]]와 손자 [[신사헌]]은 연좌되지 않고 관직에 나갈수 있었다.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