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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기록에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로 기록된 것을 바꾸는, 종계 변무 주청사(宗系辨誣奏請使)가 [[명나라]]에 파견될때, [[김계휘]]의 추천을 받아 변무 주청사의 서장관으로 임명되어 [[연경]]에 다녀왔다. 그는 [[훈구파]]의 자제라는 비방에도 불구하고 [[율곡 이이]]가 그의 능력을 인정해주어 발탁함으로써 관직에 머무를 수 있었다. 이때 그는 성균관직강 겸 사헌부지평의 직책에 임명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1582년]](선조 서산군수로15년) [[서산군|서산]][[군수]]로 전임 되었는데, 명사원접사(明使遠接使)에 임명된 이이의 천거로 그 종사관(從事官)이 되었으며, 이어서 [[종부시]]첨정에 임명되었다. 그뒤 [[사섬시]]첨정이 되었으며 사신으로 만난 [[명나라]] 사신들과 시문을 주고 받았다. [[1583년]] 한성부서윤이[[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이 되었다가 한산군수를한산군수(韓山郡守)를 거쳐 예조정랑에그해 말 문한(文翰)으로 추천되어 [[예조]][[정랑]]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광주의 집으로 낙향했다. [[1584년]](선조 17년) [[종부시]]첨정에 임명되었다가, 이 해 [[사복시]]첨정이 된 뒤 그해 말 [[성균관]]사예를 거쳐 [[1585년]](선조 18) [[군자감]]정이 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그 해 순창군수로 부임했다가, 재직 중 전염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며칠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의하면 이때 그는 저승사자에게 끌려갔다가 다른 사자가 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한다. 얼마 뒤 무속인의 굿 소리를 듣고는 사자를 데리고 무속인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저승사자에게 술이 취하도록 먹인 뒤 깨어났다 한다. 순창군수로 재직 중 [[1588년]] 파직되었다.
 
[[1590년]](선조 23) 승문원판교로 다시 등용되었다. 그해 여름 [[내섬시]]정이 되고, 대신들의 추천을 받아 다시 승문원판교가 되어 지제교 겸 [[춘추관]]편수관직을 겸직했다. 이때 명망가들이 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였으나 그는 사양하고 물러나 있었다. 1590년 가을 통정대부로 승진하여 동래부사로 발령되었다.
[[1584년]] [[종부시]]첨정에 임명되었다가 [[사복시]]첨정이 된 뒤 그해 말 [[성균관]]사예를 거쳐 [[1585년]](선조 18) [[군자감]]정이 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그 해 순창군수로 부임했다가, 재직 중 전염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며칠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의하면 이때 그는 저승사자에게 끌려갔다가 다른 사자가 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한다. 얼마 뒤 무속인의 굿 소리를 듣고는 사자를 데리고 무속인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저승사자에게 술이 취하도록 먹인 뒤 깨어났다 한다. 순창군수로 재직 중 [[1588년]] 파직되었다.
 
[[1590년]] 승문원판교로 다시 등용되었다. 그해 여름 [[내섬시]]정이 되고, 대신들의 추천을 받아 다시 승문원판교가 되어 지제교 겸 [[춘추관]]편수관직을 겸직했다. 이때 명망가들이 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였으나 그는 사양하고 물러나 있었다. 1590년 가을 통정대부로 승진하여 동래부사로 발령되었다.
 
=== 임진왜란과 최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