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포티오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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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886년]] 바실리우스가 사고로 죽고 [[레오 6세 (비잔티움 제국)|레오 6세]]가 제위에 올랐는데 제위에 오르자 마자 포티우스는 실각했고 [[887년]]에는 반역죄로 몰려 [[아르메니아]]의 외딴 수도원에 유배되었다. 포티우스는 그곳에서 자유롭게 신학과 문학 연구를 하면서 여생을 보내다가 [[893년]]에 조용히 죽었다.
 
== 저서 ==
원래 포티오스는 당시 [[동로마 제국]]을 대표하는 학자였다. 그는 [[7세기]]의 전란으로 소실되어 버린 [[고대 그리스]] 문헌의 수집에 노력하고,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제국 대학 철학과 교수도 역임했다. 포티오스는 고대 그리스의 고전에 대해 매우 조예가 깊었다. 이구나티오스 파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지식을 얻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비난할 정도로 그 박식함만은 정적 이구나티오스 파의 인물도 경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시작한 고대 그리스 문화의 부흥은 [[레오 6세 (비잔티움 제국)|레오 6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7세]] 시대에 후세 ‘마케도니아 왕조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비잔틴 문화]]의 일대 융성을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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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9세기 기독교 성인]]
[[분류:로마 가톨릭교회에서 파문된 사람]]
[[분류:9세기 기독교 신학자]]